워싱턴 도착 후 18시간 동안 일정 안 잡고 회담준비 몰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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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14일 새벽(한국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라이스 국무장관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워싱턴=안성식 기자

핀란드 헬싱키공항을 이륙해 12일 밤(이하 한국시간) 미국 워싱턴으로 향하는 대통령 전용비행기 안. 노무현 대통령이 예고 없이 비행기 뒤쪽에 위치한 기자석을 돌았다. "힘들지요…."

재임 중 마지막일지 모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노 대통령은 주변 인사들에게 "힘들지만 열심히 해보자"고 말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 도착 직후 숙소인 영빈관(블레어 하우스)에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송민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등 참모들의 보고를 받았다. 촘촘하게 일정이 배치됐던 다른 방문지와 달리 첫 공식 행사인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의 만남까지 18시간 동안 어떤 스케줄도 잡지 않았다.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 준비에 몰두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유럽 순방 중에도 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데 매달렸다고 한다. 3일 서울을 출발해 유럽 3개국 국빈 방문 뒤 대서양을 건너는 일정 속에서 출발 당시 가져온 관련 자료도 몇 차례 보완했다. 노 대통령은 라이스 국무장관을 만난 뒤 미 상공회의소에서 미국 주요 기업인들과 오찬 간담회를 갖고 "한.미 FTA에 대한 한국 정부의 추진의지가 확고하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번 정상회담 뒤 한.미 관계는 달라질 수 있을까. 노 대통령은 6일 루마니아 교민 간담회에서 "국민들이 걱정 많이 하고, 미국에서도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며 "이럴 때 제가 부시 대통령을 만나면 한동안 조용하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노 대통령을 수행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정상회담의 핵심은 북핵 문제"라고 했다. 전작권 문제는 외교 라인을 통해 이번 정상회담에서 비중 있게 논의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북핵 문제와 관련한 한.미 간 의견 차를 해소하기 위해 노 대통령은 두 가지 구상을 하는 것 같다. 정부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에게 유엔 안보리 결의안 1695호의 이행 의지를 강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 취임 이후 산업자원부에 전략물자 통제 업무를 담당하는 과(課)를 신설한 사실 등 구체적인 설명 자료도 제시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한국이 대북 제재에 소극적이라는 불만을 표출해 왔다. 그 때문에 안보리 결의안 이행 언급은 미 측의 불만을 눅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두 번째 구상은 북핵 문제 해법에서 대화로 풀겠다는 기조를 미국으로부터 확인받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데 한.미 간에 차이가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에 유엔 결의안 이행을 약속하는 대신 북핵 문제를 대화로 풀자는 다짐을 얻어내겠다는 것이다.

◆ 대화자료 교환=정상회담 전날 반기문 외교부 장관과 송민순 청와대 안보실장은 각각 라이스 국무장관을 만났다. 정상회담을 앞둔 일종의 예비 협의였다. 정부 관계자는 "공동성명을 내지 않는 대신 이번에는 양측이 '말씀자료(Talking Point)'를 만들어 의견을 교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식 의전에 없는 형식이나 한 시간 동안 두 정상이 논의할 대화 주제에 관해 양측이 사전 합의를 한다는 의미다.

워싱턴=박승희 기자<pmaster@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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