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잘살아 보세…그때 그 시절 '가족계획' 웃다 보면 씁쓸한 여운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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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잘살아 보세'(감독 안진우.28일 개봉)는 희한한 상업영화다. 의외로 되새김질할 대목이 많다. 외견상으로는 명절 대목을 겨냥한 가족코미디로서 최적의 기획상품처럼 보인다. 미혼여성인 현주가 민망함을 무릅쓰고 피임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이를 석구가 눈높이에서 '생활밀착형'대사로 재해석하고, 다시 동네사람들이 아전인수로 소화하는 방식이 특히 웃긴다. 12세 관람가 등급을 아슬아슬하게 넘어서지 않는 구전(口傳) 유머다. 가족관객들이 후일담으로 즐길 만한 제일 재미있는 요소는 어린 관객들이 믿거나 말거나 이런 코미디가 불과 30년 전에는 '현실'이었다는 점이다. 실제 가족계획 요원에게서 취재한 당시의 에피소드를 시침 뚝 떼고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코미디로서 큰 수확을 거둔다.

그런데 이 편리한 현실은 결국 이 영화가 코미디로만 질주할 수 없게 하는 요소다. 2006년 현재의 관객들은 '저출산=사회문제'라는 정반대의 새 현실을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주와 석구가 이런 미래를 내다볼 리 없지만, 영화제작진은 모를 리 없다. 몇 굽이의 사건을 거쳐 현주와 석구는 그야말로 '울고 싶은'처지에 놓인다.

이후로 영화는 팔뚝에 '완장'을 차고 나타난 인물이 부부의 밤일을, 즉 국가권력이 국민의 가장 사적인 일상을 규제하려던 당대의 발상이 희극인 동시에 비극이었음을 환기하게 해준다. 제작진의 의도이건, 아니건 이 영화에서 읽어낼 수 있는 근대화에 대한 풍자는 꽤 대범하다. 일례로 권력자의 하사품으로 지어진 마을회관은 우여곡절 끝에 화재에 휩싸인다.

'우매한 농민 대 고학력 요원''소작농 대 지주'같은 영화의 대립구도 역시 상업영화의 설정으로는 퍽 대담하다. 마을의 유지이자 대표적 지주인 강씨(변희봉)네의 두 아들(우현.안내상)은 아직 자식이 없다. 강씨네는 가족계획 홍보전을 돕는 석구를 소작을 못 붙이게 하는 방법으로 응징한다. 즉 남아선호사상 같은 봉건시대의 '관념'이 아니라 소작농의 '먹고사는'문제가 영화의 가장 큰 갈등으로 부각된다.

막상 결말에 이르면 이 봉건적 유산이 오히려 화해의 실마리가 된다. 미리 다 밝힐 수는 없는데, 근대화를 풍자하는 영화가 근대화를 무마하는 과거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셈이다. 상업영화로서 안전한 절충을 한 듯하지만, 영화의 풍자적 요소에 주목하는 관객에게나, 그저 코미디로 즐기려는 관객에게나 모두 실망스러울 선택이다. 달리 보면, 이 어중간한 결말 역시 시사적이다. 독재 권력이 가난 탈출을 이끌어낸 그때 그 시절을 돌아보면서 웃을 수만도, 울어버릴 수만도 없는 요즘의 혼란스러운 시각이 갖는 한계 그대로다.

물론 이 영화의 전체적인 전개방식은 당시의 독재정치를 정면에서 풍자한 '그때 그 사람들''효자동 이발사'처럼 공공연하지는 않다. 자연히 관객이 이를 의식하지 못한대도 영화를 따라가는 데 별 무리가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잘 살아 보세'는 '가문의 부활'과 친구가 아니라는 점이다.

비평과 흥행이 크게 엇갈린 '사랑니'이후 다시 장기인 코미디로 돌아온 김정은의 연기는 안정적이다. 얌전한 표준말을 어느새 억센 경북 사투리로 대체하면서 마을사람들의 신임을 사는 현주처럼, 김정은 역시 관객의 신임을 다시 사려는 자세다. 무엇보다도 이범수는 '짝패'에 이어 능청스러운 충청도 사투리 연기에 한창 물이 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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