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바칸 르포] 쓰레기 위에서 부르는 희망의 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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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pagpag)' 음식물 쓰레기로 버린 쌀을 씻어 다시 지어먹는 밥을 이르는 말이다. 이 '팍팍'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시 톤도에 있는 탐바칸. 하루 200여대의 트럭이 마닐라시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버려놓고 가는 곳이다. 이곳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약 1000여명.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집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쓰레기 더미 위에 헝겁과 비닐로 지붕을 만들어 살아가고 있다. 그나마 없는 사람들은 아무 쓰레기 더미위에나 몸을 뉘이면 그게 집이다. 사람들은 이들을 '스카벤저(폐품 수집자)'라 부른다. 남들이 버린 쓰레기더미에서 재활용 할 수 있는 쓰레기를 종류별로 모아 다시 파는 사람들이다.

매립장에 들어선 차가 쓰레기를 쏟아내자 코를 찌르는 악취에도 아랑곳없이 손에 갈고리를 든 사람들이 순식간에 모여든다. 잠자다 온 사람들, 밥을 먹다말고 뛰쳐나온 사람들, 다른 곳에서 쓰레기 뒤지다 몰려온 사람들. 트럭이 쓰레기를 쏟아내자 70여명의 스카벤저들이 먹이를 본 야수 마냥 쓰레기더미 위로 뛰어 오른다. 멀리서 보면 인간피라미드를 쌓고 있는 모습 같다. 그들의 갈고리는 재활용품이 나올만한 쓰레기를 뒤져 원하는 물건이 나오면 잽싸게 챙진다.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니 쓰레기에서 흘러나온 시커먼 물속에 들어가 쓰레기를 뒤지는 사람들이 보였다. 남들이 한번 훓고 지나간 자리지만 자세히 뒤져보면 귀고리나 목걸이 등 귀금속이 나오기도 한단다. 피부병에 걸리지 않는냐고 묻자 면역이 돼서 괜찮단다. 젊은 스카벤저 중에는 학교에 다니는 사람들도 있지만 학비가 없어서 학업을 중단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여자들도 쓰레기장에서 눈에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간혹 임신한 여자들도 보이지만, 그들은 주로 집안 일을 한다.

어느 한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이름은 마이클(21세). 9살부터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고, 지금은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쓰레기를 모아팔고 있다고 한다. 쓰레기에서 지금 고르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메탈'이라고 답했다. 메탈은 1kg 당 4페소(1페소 = 20원)에 판매된다고 했다. 우리나라 돈으로 100원도 안 되지만 그들에게는 큰 돈이다. 그들은 주로 캔, 알루미늄, 플라스틱, 유리, 쌀 등을 모아서 다시 파는데 알루미늄은 60페소, 플라스틱은 15페소, 유리는 2페소, 그리고 쌀은 5페소에 판다고 한다.

어디선가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라디오나 TV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귀를 잘 기울이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보았다. 나무와 천으로 만들어진 작은 가게 안에서 아이들이 가라오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탐바칸에서는 가라오케가 인기다. 트럭을 기다릴 때나 할 일이 없을 때 그들은 가라오케에서 삶을 재충전한다. 이들 중 가수를 꿈꾸는 친구들도 있었다.

삶은 고달파도 꿈이 있는 스카벤저들, 그들의 꿈이 이루어지길 기원하며 탐바칸을 떠났다.

중앙일보·캐논 대학생사진기자 (중앙대 사진학과 4년 이은정)

[관련화보]필리핀 탐바칸 쓰레기매립장 ①

[관련화보]필리핀 탐바칸 쓰레기매립장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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