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가지 않은 길에 노벨상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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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연세대 100주년기념관 앞에서 '연세노벨포럼'에 초청된 노벨상 수상자들이 기념식수 행사를 기다리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로버트 먼델(미국, 1999, 경제학), 에드 워드 프레스콧(미국, 2004, 경제학), 아론 치에하노베르(이스라엘, 2004, 화학), 머리 겔만(미국, 1969, 물리학), 루이스 이그내로(미국, 1998, 생리의학), 뒷줄 왼쪽부터 고시바 마사토시(일본, 2002, 물리학), 페리드 머래드(미국, 1998, 생리의학). 김경빈 기자

"과학자는 영웅도, 신도 아닙니다. 과학자를 영웅시하는 풍토는 과학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연세대 주최로 11일 서울 캠퍼스 100주년 기념관에서 '과학 교육의 진화와 발전'을 주제로 열린 연세노벨포럼에서 아론 치에하노베르 박사(이스라엘 기술연구소, 2004년 노벨화학상)는 황우석 사태를 예로 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노벨상을 받았지만 평범한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 별다른 특권을 누리지 않고 평범한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치에하노베르 박사 외에 이날 포럼에 참석한 일본 고시바 마사토시 박사(도쿄대, 2002년 노벨 물리학상), 미국 머리 겔만 박사(미 샌타페이연구소, 1969년 노벨물리학상) 등은 한결같이 과학 교육은 창의성을 길러주고,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갈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의 발표를 요약했다.

◆ 치에하노베르 박사=한국은 '하루빨리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해야 한다'는 꿈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학자는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연구를 해야지 상을 타기 위해 연구를 해선 안 된다. 특히 과학교육에 있어서 조언자(멘토) 역할이 중요하다. 내 경우에도 노벨상을 받을 만큼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석.박사 과정 때 만난 멘토의 조언에 힘입은 바 크다. 멘토들은 내 연구 방향이 샛길로 빠지거나 하면 바로잡아주곤 했다. 학생 때 멘토가 길도 없고 약육강식이 횡행하는 무서운 정글에서 탐험해 보자고 제안해 그 당시 남이 연구하지 않던 단백질 분해에 대해 연구를 하게 됐다.

◆ 고시바 박사=20세기는 미국과 유럽이 주도한 과학 혁신의 시대였지만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로 만들어야 한다. 초대형 입자 가속기를 아시아 지역에 건설해 그런 시대를 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시아 인구가 20억 명이나 되는데 노벨 과학상을 받은 사람이 적다. 중국인으로 과학 분야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세 사람인데 그들 역시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연구한 성과로 상을 받았다. 과학 분야의 아시아 시대를 열기 위해서 젊은이들이 모여 기초과학에 관해 토론과 연구를 할 수 있는 장을 만들자. 이런 제안이 중국과 대만.싱가포르 같은 주변국 과학원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아시아 국가 간에 정치적 갈등이 많지만 기초 과학은 그런 게 없기 때문에 서로 손잡기 쉽다.

◆ 겔만 박사=단순성과 복잡성 등 여러 이론을 연구할 수 있는 작은 이론연구소 설립이 필요하다.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한데 모여서 연구하면 창의적인 연구 성과를 낼 수 있다. 복잡계 연구로 널리 알려진 샌타페이연구소는 창립 당시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좋은 연구 성과를 내고 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bpark@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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