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 전격결정 배경] 북핵관련 美에 반대급부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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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4일 미국의 추가 파병 타진 이래 한달 넘도록 꿈쩍도 않던 정부가 전격적으로 파병을 결정한 것은 국민 여론의 지지가 높게 나타나고 20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북핵 문제와 관련해 다소 유연한 입장을 표명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발표 D-데이를 18일로 잡은 17일 밤 이라크 주둔 다국적군을 유엔 승인하에 두는 안보리 결의안이 통과하면서 국민의 파병 반대 여론은 많이 수그러들 것으로 청와대는 판단했다. 여론조사 결과 안보리 결의안하의 파병에 대해서는 국민의 70% 가량이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대통령 재신임 정국 와중에 청와대 정무파트에서 각별히 신경을 쓴 부분이다. 청와대 유인태 정무수석은 17일 밤 4당 대표에게 직접 정부의 파병 결정 여부를 사전 통보하기도 했다.

여기에 방콕 한.미 정상회담이 20일로 잡혀 있는 점도 고려됐다. 정상회담 전에 매듭짓지 못하면 이후 결정 사항은 미국에 굴복해서 그렇게 됐다는 식으로 될 수 있고, 이 또한 국내정치에 부담이 될 것이란 판단이 있었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한.미 동맹관계 및 북핵과 관련한 반대급부 챙기기다. 국방.외교부와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적극적으로 움직인 부분이다. 평화헌법의 제약을 안고 있는 일본이 17일 연내 파병 의사를 미국에 전달한 마당에 한.미동맹 관계를 위해선 20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최소한의 성의 표시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부는 미국이 원하는 전투병 파병을 18일의 발표에서 공식화하지 않음으로써 정상회담 때 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 해결 의지를 끌어내려는 자세를 보였다. 정부 관계자는 "이라크 파병을 북핵과 연계하지 않겠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지만 미국이 진전된 얘기를 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맞다"고 말했다. 미국 쪽에서 북한의 최대 우려사항인 안전보장에 대해 구체적 검토를 하고 있다는 등의 진전된 발언을 한 것은 우리 측의 이 같은 생각을 읽은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파병 결정까지는 정부 내에서도 두 목소리가 나오는 등 우여곡절도 적잖았다. 외교.안보 분야 관계자들은 처음부터 국익을 고려할 때 파병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반면 청와대 정무수석실은 파병 반대 목소리를 냈다. 유인태 정무수석은 "외교.안보 라인의 시각이 편향돼 있다"며 "개인적으론 파병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오영환.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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