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in] 싱가포르 비엔날레 리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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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전력의 30%를 에어컨 돌리는 데 쓴다는 싱가포르는 작지만 탄탄한 느낌의 도시국가였다. '2006 싱가포르 비엔날레'를 소개하는 리 수안 히앙 국가예술이사회 의장의 표현도 "스몰 앤드 콤팩트(small and compact)"였다. 싱가포르가 건국 이래 최초로 마련한 국제현대미술제라는 '싱가포르 비엔날레'는 창설 첫해의 풋풋함과 의욕이 어우러진 축제로 다가왔다.

다인종, 다종교 국가의 특성을 살린 주제 '믿음'이 우선 믿음직스러웠다. 쓰나미(지진 해일)로 고통받은 아시아 지역인 모두가 잠시 멈춰서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는 비엔날레 측의 설명이 가슴에 와 닿았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이 허망한 삶을 가치있게 해줄 믿음을 미술작품으로 찾아보자는 것이다.

싱가포르 비엔날레는 다른 비엔날레와 달리 대형 전용 전시장을 만들지 않았다. 대신 도시 곳곳에 널려있는 사원과 절과 공공장소에 작품을 걸고 설치했다. 비어있던 시청 건물, 병영으로 쓰이던 '탕린 캠프'가 서민 체취 물씬한 전시장으로 변신해 작품 감상에 제격이었다. 평소에는 발길이 가지 않던 다른 종교의 성전에 가게 하는 효과도 노렸다. 대부분 걸어서 닿을 수 있는 그만그만한 곳이라 전시장을 돌다 보면 저절로 도시 관광이 된다. 싱가포르 최대 번화가인 오차드 거리에까지 작품을 늘어놓아 관람과 쇼핑이 한 자리에서 가능하게 한 점도 '콤팩트'해 보였다. 비엔날레를 싱가포르 관광 진흥과 경제 회생책의 하나로 활용하려는 영리한 속내가 들여다보이는 순간이다.

제1회 싱가포르 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은 이는 일본 큐레이터 난조 후미오다. 일본의 잔인한 식민 통치로 크게 고통받았던 싱가포르가 첫 국제미술행사를 치르며 일본인 전시기획자를 불러들인 점이 흥미로웠다. 비엔날레 조직 경험이 풍부하고 국제 미술계 인맥이 촘촘한 난조 후미오를 기용한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우리라면 그랬을까' 싶었다.

싱가포르=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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