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의심을 멈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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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한.미 FTA, 되기는 되는 거야." 자주 받는 질문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무언가 우리나라에 좋은 것이라고 믿고 있던 나도 지난 몇 달 반대시위와 음모론 사이에 끼어 우왕좌왕하며 과연 이 FTA가 제대로 타결될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던 나는 요즈음 "앞으로도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결국은 타결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몇 가지 이유 때문에 감히 그런 전망을 해 본다.

첫째, FTA 타결이 점쳐지는 이유는 타결되지 않을 경우 그 후환이 너무 두렵기 때문이다. 개별 사안 때문에 협상 전체를 무산시킨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다. 국제사회에서 잃게 될 신용도 걱정이지만 FTA가 안겨줄 수 있는 기회라는 게 협상 무산으로 놓치기에는 너무 아까워서다. 이런 판단에는 한국도 미국도 같을 것이다. 무역과 일자리도 중요하지만 동맹관계를 탄탄히 하고 동북아 경제외교 판세를 안정적으로 꾸려가는 데 FTA가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건 상식이다. 농산물.서비스 등 개별 사안과 성장.일자리.동북아평화체제 등 국가적 과제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지 정도의 우선순위 감각은 양쪽이 다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둘째, FTA가 타결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리한 요구를 하기에는 서로의 사정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사 모든 걸 '힘있는 자와 힘 없는 자' 간의 관계로만 보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바와 달리 미국도 미국 나름대로 상생 내지 실용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더구나 지금의 사안이 힘으로 밀어붙이게 마련인 국방이나 외교 문제도 아니고 호혜 원칙 아래 추진되는 경제 협상이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우리가 협상을 둘러싼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 등을 늘 염두에 두듯이 미국도 농산물 등 민감 사안들이 한국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제국주의 시대도 아니고, 어느 협상이든 상대편의 정치생명을 마감시킬 수 있는 요구를 할 수 없다는 기본 상식 정도는 아무리 막무가내인 미국도 갖추고 있다는 얘기다(그래서 극렬한 반대시위가 농산물시장 방어에 목을 걸고 있는 우리 협상당국에는 오히려 '큰 힘'이 된다는 얘기도 있다).

한국 사정을 너무 잘 아는 미국이니 쌀과 같은 주요 농산물 시장을 개방하라는 요구를 고집할 미국 정부도 아니고, 그런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 한국 정부도 아니다(농산물 시장을 개방할 경우 또 소요될 엄청난 보조금을 생각하면 차라리 개방하지 않는 게 한푼이라도 절약하는 길이라는 생각도 든다).

셋째, 우리 정부가 전과 다르게 한.미 FTA에 적극적이다. 대통령 직속으로 FTA 체결지원단을 두고 광복절 경축사 등에서도 적극적으로 언급하는 등 전과 다르게 대통령이 직접 챙기며 대국민 설득에 나서고 있다. 이런 적극성은 한.미 FTA 추진을 둘러싼 그동안의 음모론을 잠재우는 데 상당 부분 기여할 것이다.

아직도 머리에서 음모론을 지우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반대하는 사람들의 반대는 그렇다 치고 지지해야 할 사람들마저 '정부가 속으로는 협상이 무산되기를 바란다'고 자꾸 의심을 하면, 협상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욱하는 마음에 '그래, 한.미 FTA 그만둘게'하고 돌아서면 어쩔 거냐고.

칭찬하면 코끼리도 춤을 춘다고 하지 않는가. 반대도 음로론도 그만하면 됐다. 이제는 그런 의구심은 일부러라도 털어낼 때가 된 것 같다. 'FTA 추진하는 거 잘하는 일이고, 정부가 진정으로 추진하는 것 같다'고 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래야 혹시 누군가 마음 한구석에 키우고 있을지 모를 FTA 무산 음모를 감히 실행에 옮기지 못할 것 아닌가. 자, 이제 우리 코끼리 춤 한번 추게 해볼까.

김정수 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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