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한·미FTA가 성공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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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한.미 양국은 올해 두 차례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지만 쟁점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이달 6~9일 미국 시애틀에서 열릴 3차 협상에서 한국이 좋은 결과를 거두려면 무엇보다 미국의 입장을 좌우하고 있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첫째, 한국은 미국이 한.미 FTA 협상을 최우선적인 통상 정책의 하나로 상정하고 이를 타결하기 위해 전력을 쏟고 있다는 점을 잘 활용해야 한다. 미국은 오만.바레인 등 16개국과 FTA를 체결했지만 이들 국가와는 교역 규모가 작아 상업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 그러나 한.미는 지난해 서로 720억 달러의 상품을 주고 받은, 의미 있는 무역 상대국이다. 미국으로선 한국과의 FTA가 1992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가장 중요한 무역협정이다.

둘째, 다자간 무역규범을 마련하기 위한 도하라운드 협상이 최근 결렬됨에 따라 미국은 주요 경제권과의 양자 무역협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됐다. 한.미 FTA는 그 자체의 경제적 이익도 있지만 일본.브라질 등 다른 주요 경제권과의 협상에 앞선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한.미 FTA 협상이 실패한다면 미국은 무역 자유화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기회를 놓쳤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셋째, 미국은 전략적.경제적으로 중요한 동북아에서, 점점 커지고 있는 중국의 영향력을 우려하고 있다. 미 정부는 최근 몇 년 새 한.중 교역이 크게 늘어난 반면 한.미 교역이 상대적으로 정체 상태란 점에 주목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한국의 제1위 교역 상대국으로 떠올랐다. 미 정부 관리들은 한.미 FTA가 이 지역에서 미국의 경제 활동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다.

넷째, 미국이 맺은 다른 FTA와 달리 한.미 FTA는 미 의회 내 여야 모두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FTA에 부정적인 민주당의 반대를 누그러뜨릴 수 있을 정도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노동.환경 기준을 갖추고 있다.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가 상당하다는 점도 미국 업계로 하여금 정치권에 지지 로비를 벌이게 만드는 강력한 유인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이런 요인을 FTA 협상에서 최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지렛대로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법적.정치적 이유로 타협하지 않으려는 몇몇 의제가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부시 행정부는 미국의 대북정책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원산지 인정에 강력 반대하고 있다. 미 의회에서도 대부분의 의원들이 이에 동조하고 있는 상황이다. 개성공단 문제는 별도로 분리해 차후 논의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반덤핑과 같은 미국의 무역구제법률(trade remedy law)을 완화할 수 있는 권한이 미국 협상대표들에게 없다는 점도 한국 측이 이해해야 할 대목이다.

한국 내 일각에선 미국이 멋대로 정해놓은 협상 일정을 한국에 강요하며, 협상이 한국에 불리해지도록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 의회가 행정부에 통상 협상 권한을 위임한 '무역촉진권(TPA)'의 만료 시한(2007년 7월 1일) 전에 한.미 FTA를 처리하려면 내년 초까지는 협상이 타결돼야 한다. TPA 만료 이후 FTA를 처리할 경우엔 의회가 협상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이를 수정하려 들 것이기 때문에 상황이 매우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TPA의 연장 역시 선거 등 미국 내의 정치적인 이유로 힘든 상황이다. 미국 협상단 역시 협상 마감 시한에 제약받기는 한국과 마찬가지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앞으로 협상에서 정치적.법적 논쟁을 마무리하고 협상 전략을 충분히 활용하려면 무엇보다 적시에 협상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쌓는 것이 필요하다.

김석한 재미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