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깊이읽기] '국가보다 큰 괴물' 다국적기업의 정체 샅샅이 파고 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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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한편 겁나긴 하지만, 괴물의 정체를 알아가는 재미는 여간 쏠쏠한 게 아니다. 인간의 추리 본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영화 '괴물'이 한여름 극장가를 달궜던 데는 이런 인간 본성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 책의 원제 '리바이어던(Leviathans)'은 성경에 나오는 괴물을 뜻한다. 리바이어던이 유명해진 건 17세기 영국 사상가 홉스가 이를 국가에 비유하면서다. 홉스가 국가라는 중세 괴물을 세상에 드러냈다면, 저자들은 현대판 괴물을 해부해냈다. 바로 다국적 기업(MNC.Multinational Corporation)이다.

유엔이 추산한 2000년 현재 다국적 기업 수는 6만5000개. 이 중 5만 개는 선진국에 모기업이 있다. 개발도상국에는 1만3000여 개의 모기업이 있는데 그중 절반 이상이 한국에 있다.

저자들은 다국적 기업의 어제와 오늘을 낱낱이 비춰냈다. 먼저 덩치를 따져보니 웬만한 나라 뺨친다. 나라와 기업을 국내총생산(GDP)과 매출 순위에 따라 줄 세우면 상위 100위 중에 기업이 51개, 국가는 49개가 들어간다. 미국.일본 등 GDP 상위 49개국만이 다국적 기업보다 크다. 나머지 수백 개 국가의 경제력은 내로라하는 다국적 기업 하나에도 못 미친다는 얘기다.

다국적 기업의 뿌리도 추적했다. 기원전 2000년 고대 앗시리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페니키아 상인들의 해상무역 조직이 원조다. 중간 중간 기업 일화들이 등장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예컨대 켈로그는 2차 대전 이후 영국에서 아침식사용 시리얼을 팔기 위해 오트밀.훈제청어로 된 전통식단 대신 미국식 식단을 대대적으로 광고했다. 이 같은 '무의식적 세뇌'는 오늘날이라고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책은 다국적 기업과 세계화를 한 묶음으로 엮었다. 기업이 세계화를 낳고, 세계화가 기업을 더 키웠다는 것이다. 실제 이들은 도로와 철길을 놓고, 운하와 하늘 길을 뚫었다. 무역.금융.이민.기술 등 모든 분야를 경제에 통합시켰다. 웬만한 나라도 못하는 표준과 질서를 스스로 만들어 냈다.

저자들은 그러나 미래 기업의 지배구조나 사회적 책임 등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후인의 몫으로 남겼다지만, 여전히 아쉬운 점이다.

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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