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의 저주'는 풀리지 않았다…컵스, 말린스에 역전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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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의 저주'는 끈질겼다. 가을의 한복판에서 붉게 물든 리글리필드의 담쟁이 넝쿨은 이날 따라 '핏빛'을 떠올리게 했다. 시카고 컵스의 팬들은 58년 묵은 저주를 풀면서 월드시리즈에 진출하기를 염원했지만 야구의 신(神)은 짓궂게도 그들을 또 외면했다.

패기의 플로리다 말린스가 또 한번 짜릿한 역전극을 연출하며 '가을의 고전' 월드시리즈에 선착했다. 말린스는 16일(한국시간) 시카고 리글리필드에서 벌어진 내셔널리그 챔피언결정전 7차전에서 3-5로 뒤지던 승부를 9-6으로 뒤집고 역전승, 4승3패로 내셔널리그 챔피언이 됐다. 말린스는 19일부터 아메리칸리그 챔피언과 대망의 월드시리즈를 벌인다.

창단 11년의 애숭이 말린스는 1997년 월드시리즈 우승 이후 6년 만에 두번째 패권에 도전하게 됐다. 컵스는 1945년 이후 58년 동안 기다려온 월드시리즈 '진출'의 꿈조차 무산됐다. '월드챔피언'에는 1908년 이후 95년 동안 올라본 적이 없다. 4차전까지 3승1패로 앞섰던 컵스는 6,7차전을 모두 홈구장에서 내줬기에 그 패배가 더욱 쓰라렸다.

말린스는 3-5로 뒤지던 5회초 이번 시리즈 MVP로 선정된 이반 로드리게스의 2루타로 4-5로 따라붙은 뒤 미겔 카브레라의 내야 땅볼과 데릭 리의 적시타로 6-5로 역전에 성공했다. 시즌 도중 19승29패의 하위팀 말린스 감독으로 취임한 잭 매키언(72)감독은 놀라운 지도력으로 팀을 내셔널리그 정상까지 이끌어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역대 최고령 감독이 됐다.

반면 지난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이끌고 월드시리즈에 올랐던 컵스의 더스티 베이커 감독은 결정적인 투수교체 실수로 2년 연속 좌절을 맛봤다. 베이커 감독은 지난해 월드시리즈에서 3승2패로 앞선 6차전에서 선발 러스 오티스를 조기 교체해 결국 시리즈를 애너하임 에인절스에 내준 적이 있다. 올해 챔피언결정전 역시 3승2패로 앞선 6차전 때 선발 마크 프라이어의 교체 타이밍을 놓치고 3-8로 역전패 한 것이 결정적인 패인이라는 분석이다.

한편 6차전에서 파울 타구를 건드려 '손의 저주'의 주인공이 된 스티브 바트먼(26)은 16일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플로리다의 젭 부시 주지사는 "만약 바트먼이 시카고에 계속 머물기가 곤란한 처지라면 플로리다 폼파노비치의 휴양지에 3개월 동안 무료로 머물 수 있게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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