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는 고르바초프가 힘을 발휘 못해 인민저항은 소의 개혁 덕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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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동유럽이 반공혁명이 계속되는 가운데 90년대를 맞았다.
인민 스스로의 반체제투쟁으로 한해를 보낸 동구 6개국은 이제 소련의 그늘에서 탈피,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문제를 결정하게 됐다.
동유럽을 지배했던 과거 제국들처럼 소련은 폴란드· 헝가리· 동독·체코·루마니아· 불가리아등 6개국을 군사력과 비밀경찰, 그리고 힘의 정치를 번갈아 사용해 지배해 왔다.
소련은 베를린(53년) 부다페스트(56년) 프라하(68년) 그다니스크(81년)사태에 군대를 동원, 유혈진압했다.
그러나 89년의 동구혁명은 1세기 이상 동구를 지배해 온 「힘의 논리」의 붕괴를 가져왔다.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서기장은 45년이래 동구에 주둔, 동구국가들을 위협해온 소련군대를 45년만에 철수하기 시작했다.
고르바초프의 소련주둔군 철수로 군사적 위협이 제거됐음에도 불구하고 동구 스탈린주의 공산정권들은 인민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아무런 물질적 보상이나 정치적 대응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동구의 인민저항은 근대 세계사를 바꾸어 놓은 현대 언론·기술, 그리고 풍요를 향한 인민들의 욕구와 인권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힘을 얻고 있었다.
이같은 인민의 저항은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 추진의 덕을 입기도 했다.
동구 각 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공산당혁명은 수십년간 누적돼 온 여러 가지 이유가 원인이 되고 있다.
동구의 소수 인민그룹들 특히 소수정치인, 반체제운동가, 소련의 방관적 관망세력, 그리고 국내 상황으로 인해 버림 받았던 일부 시민그룹은 민중혁명이 각 전환점에 다다를 때마다 중요한 결정을 이끌어내는 세력들이 됐다.
이들 소수그룹에 의한 역사적 결정들은 동구사회에서는 생소하기만 한 서방식 자유주의, 즉 다원화된 민주주의 이상에 입각한 것들이었다.
루마니아를 제외한 다른 동구국가의 공산당지도자들은 결정적 변화를 초래할 위기가 닥칠 때면 사태가 악화되기 전에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했다.
루마니아의 비극은 한 독재자가 얼마만큼의 광기를 발휘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동구에 대한 소련역할의 한계도 함께 드러낸 것이었다.
고르바초프는 동구공산당지도자들이 국경개방과 정치범석방을 놓고 고민에 빠졌을 때 개방과 석방을 지원했다.
특히 동독과 체코에 주둔한 소련군은 이 두 나라 공산당내 강경파들로 하여금 「자국민과의 전쟁」시도를 억제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루마니아의 경우 고르바초프의 영향력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동구의 변화속도가 가중되면서 고르바초프와 그의 동맹국 지도자들은 동구의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그 영향이 자신에게 거꾸로 미치게 될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공산주의의 위기가 고조되면서 동구반체제운동은 성숙단계에 돌입했다.
폴란드의 미치니크와 체코의 하벨등 반체제인사들은 용기를 얻고 대중의 기반 위에서 비폭력 민주단체를 조직했다.
동구 최초의 민중조직인 폴란드의 자유노조는 지난 81년 「동구생존논리」에 따른 계엄령선포로 좌절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자유노조 지도자들은 8년 동안 인내하며 「협상」 이라는 정치예술을 배웠다.
이같은 변혁의 물결에 밀려 폴란드와 헝가리는 공산당 지도층의 단계적 퇴진으로 당의 힘이 약화됐다.
동독·불가리아·체코·루마니아는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가 가져다준 영향과 폴란드·헝가리의 개혁 영향을 받아 변혁을 겪기 시작했다.
이들 나라는 당지도부의 부패척결로 시작된 민중봉기가 마침내는 반공산당운동으로 확산됐으며 그 결과 정치적 대격변이라는 폭발적 사태로 이어졌다.
특히 베를린장벽 붕괴와 공산당의 몰락으로 이어진 동독사태는 다시 철권정치의 루마니아 차우셰스쿠의 파멸로 이어졌다.
고르바초프는 이같은 사태에 직면해 역사적으로 항상 사용해온 무력을 도구로 사용하지 않기로 결심했음이 분명하다.
고르바초프는 무력불사용 원칙고수를 통해 동맹국·공산통치자의 상실마저 기정사실로 감수했다.
소련군이 아직도 동구에 주둔하고 있긴 하지만 이제 소련블록은 붕괴되고 있다.
동구국가들은 역사상 그 어느 때 보다도 현재 자국의 미래설계에서 자유를 향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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