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분 5.15% '장하성 펀드' 무슨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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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5.15% 대 71.65%. '장하성 펀드'라 불리는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가 매입한 대한화섬 지분은 5.15%고, 태광그룹 회장 등 대주주 지분은 71.65%에 이른다. 이 때문에 장하성 펀드가 대한화섬 지분을 매입했다고 공시한 데 대해 일각에선 '계란으로 바위 치기'란 지적이 나왔었다.

그러나 '장하성 펀드'의 지분 5.15%는 예상외로 만만찮은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대표소송, 주주총회 소집, 회계장부 열람 등 각종 소수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법과 증권거래법 등에 따르면 5%대의 지분은 각종 소수주주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양이다. 상법에 따르면 특정 회사의 지분을 1% 또는 3% 이상만 가지면 대표소송 제기권, 주주 제안권, 주주총회 소집 청구권, 회계장부 열람권 등을 행사할 수 있다. 증권거래법으로도 지분 취득 후 6개월 만 지나면 상법에서 규정한 지분율보다 훨씬 낮은 지분만 확보해도 소수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

특히 증권거래법은 각종 소수주주권의 행사 요건으로 상법보다 낮은 지분을 정하고 있는 대신 취득 후 6개월이 지난 뒤에야 소수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장하성 펀드는 상법상의 요건을 훨씬 넘는 지분이 있기 때문에 당장 소수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런 소수주주권을 행사하면 경영진을 상당히 압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소액주주로서 주주대표소송을 내 이사.감사 등의 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 주주대표소송이란 소액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회사의 이사나 감사의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 제기하는 소송이다. 장 교수가 삼성전자 등을 대상으로 벌인 소액주주운동 때도 주주대표소송이 위력을 발휘했다.

또 3% 이상 지분만 있으면 주주총회 소집 청구권이나 회계장부 열람권 등을 통해 ▶정관 변경▶이사 선임▶이사 해임 청구 등을 요구할 수 있다.

물론 주주총회 등에서 표 대결을 하면 현 경영진이 당연히 이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주주총회 소집이나 회계장부 열람 등을 되풀이하면서 경영진을 압박하면 현 경영진이 요구사항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며 절충안을 내놓을 가능성이 커진다.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이 가진 대한화섬 지분은 의결권이 있는 것만 53.9%로 절반을 넘는다. 여기에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까지 포함하면 현 경영진이 가진 지분만 71.65%가 된다.

이처럼 대주주 지분이 월등히 많더라도 각종 소수주주권을 동원해 경영상 문제점을 사사건건 지적하고 나서면 대주주로서도 일정 부분 소액주주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장하성 교수는 이미 장기전을 펴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는 "대한화섬에 대한 투자는 최소 몇 년 이상의 장기적 관점에서 이루어졌다"며 "단기간에 자본이득을 본 뒤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장하성 펀드가 상대를 잘못 골랐고, 소수주주권을 아무리 행사하더라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애널리스트는 "양자 간의 지분 차이가 워낙 커 표 대결이 무의미한 상황에서 소수주주권도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소수주주권을 너무 자주 행사하다 보면 장하성 펀드가 경영진의 뒷다리만 잡는다는 식으로 비쳐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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