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건강 이야기] 건강 9단이 되는 비결, 걷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5면

자율(自律)신경이란 것이 있다. 말 그대로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스스로 작동하는 신경이다. 주로 맥박과 호흡.혈압.소화.성기능 등 필수적 생리현상을 주관한다.

자율신경은 교감신경(交感神經)과 부교감신경(副交感神經)이란 두 가지 신경을 축으로 움직인다. 교감신경은 비상시 작동하는 신경이다. 맥박과 혈압.호흡 등 인체가 짧은 시간에 큰 힘을 발휘하는 데 필요한 작용은 끌어올리는 반면 소화와 배설.성기능 등 한가한 작용은 억제한다. 평온한 상태에서 작동하는 부교감신경은 교감신경과 정반대 작용을 한다. 소화와 배설을 촉진하고 발기는 일으키지만 사정은 늦춤으로써 원활한 성기능을 돕는다.

교감신경이 당장 능률을 향상시키기 위한 퍼포먼스(performance)라면 부교감신경은 미래를 위해 힘을 비축하는 포텐셜(potential)이라고 볼 수 있다.

인체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선 두 가지 신경이 서로 조화를 이뤄야 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현대인이 교감신경 우위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각박한 생존경쟁의 와중에서 과도한 스트레스에 만성적으로 시달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처음엔 자율신경실조(失調)증이란 증세가 나타난다. 비정상적으로 우세해진 교감신경이 인체를 탈진으로 몰아간 나머지 자율신경이 뒤죽박죽 엉키는 것이다. 소화불량과 불면증, 요통과 요실금, 가슴 두근거림, 변비와 설사 등 현대인이 자주 호소하는 증상의 대부분이 자율신경실조증과 관련이 있다. 이들의 특징은 여러가지 검사를 받아도 정상판정을 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대개 의사들은 '신경성이니까 신경쓰지 마세요'라고 주문한다. 여기까진 비록 주관적으로 괴롭긴 하지만 객관적으로 큰 탈은 일으키지 않으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이러한 교감신경 우위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면 면역력의 저하와 혈압 및 혈당의 상승 등으로 심각한 질환을 유발한다. 고혈압과 심장병, 당뇨와 뇌졸중, 암 등 대부분의 성인병이 스트레스와 관계가 깊다. 최근 원광대 보건복지학부 김종인 교수의 연구에서도 위암 환자는 1백세 이상 장수노인들에 비해 평소 8배나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건강과 장수를 위해선 자율신경의 무게중심을 교감신경에서 부교감신경으로 옮겨와야 한다는 뜻이다. 취미나 명상.운동.문화생활 등 그것이 무엇이든 편안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 기자는 걷기를 권유하고 싶다. 걷기야말로 가장 보편적이며 무난한 종목일 뿐더러 성난 자율신경을 달래는 데 탁월한 효과를 지닌다.

예컨대 자율신경실조증으로 소화가 안되는 사람이 식후 달리기나 구기운동을 한다면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이들 종목은 교감신경을 자극함으로써 오히려 소화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걷기는 비록 달리기나 구기운동에 비해 체력향상 효과는 적지만 자율신경의 균형을 잡아주는 데 가장 이상적인 운동이다.

최근 발기부전과 조루 등 정력이 떨어져 고민인 남성들에게도 걷기가 도움이 된다. 성기능은 혈관과 신경 두 가지가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당뇨나 고혈압 등 특별한 질환을 갖고 있지 않다면 대부분 혈관보다 신경의 문제라고 봐야 한다. 여기서 신경이란 의지와 상관없는 자율신경이다. 평소 만성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거나 성행위에 앞서 잘 하려고 강박적으로 애쓸수록 실패하기 쉬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성기능장애가 있다면 먼저 걷기를 통해 잔뜩 날이 선 자신의 교감신경부터 누그러뜨려야 한다.

걷기는 창조적 영감(靈感)을 얻는데도 일조한다. 칸트의 철학과 괴테의 문학은 모두 책상머리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일생 동안 걷기를 통해 역사에 빛나는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독자 여러분도 걷기를 통해 심신의 건강을 얻고 창조적 영감이 샘솟는 기쁨을 누려보길 바란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