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불평해도 마음 즐겁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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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루돌프 사슴 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크리스마스 캐럴이 흐르고 있는 5평 남짓한 놀이 방에서 코흘리개 어린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구부러진 손가락으로 열심히 블록 쌓기에 여념이 없다.
혼자서는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어 보조의자에 몸이 묶여 겨우 앉아있는 어린이도 한쪽 팔을 움직여 만든 친구의「에펠탑」(?)이 근사해 보였던지 서툰 발음으로 탄성을 지른다. 『으아, 머이따(멋있다) ! 』
한국 뇌성마비 복지회 부설 오뚜기 유아원(서울동작구상도 4 동244의 2).살림살이가 넉넉지 않은 영세민들의 뇌성마비 자녀들을 오전9시30분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돌봐주는 이곳에는 4∼7세 뇌성마비아 11명이 저물어 가는 올해를 보내고 있었다.
『지난주 금요일(22일)에는 가족·형제들도 모두 초대해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어요. 곁 보기에는 몸이 뒤틀리고 안면근육도 정상이 아니어서 모자란 듯이 보이지만 이들 중에는 피아노 한번 배우지 않았는데도 최근 유행하고 있는「호랑나비」를 멋들어지게 치는 어린이도 있어요.』 3년째 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유아원 교사 유미숙씨(26·여) 는『몸은 불편하지만
마음은 더없이 고운 천사들』이라며 자랑한다.
87년5월 설립된 이 유아원은 입에 풀칠하기에도 바쁜 부모들로부터 하루 몇 시간이라도 뇌성마비아를 돌보는 일에서 해방시켜주고, 어린이들에게는 사회성과 자립심을 길러주며 간단한 물리치료도 받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 그 설립 취지·비틀거리다가 쓰러져도 다시금 일어서는 오뚝이처럼 되라는 뜻에서「오뚜기 유아원」으로 명명했다.
몸이 많이 불편하거나 집이 멀어 봉고 차를 타고 오는 오후반 어린이들이 도착하는 오전11시30분까지가 자유놀이시간.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을 플래스틱 통에 집어넣어 각자의 서랍에 차곡차곡 정리를 끝내면 공부방으로 옮겨 간단한 수 개념과 노래를 익힌다. 각자의 수준이 엄청나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자연 개별지도를 할 수밖에 없다.
대 근육·소 근육의 움직임, 눈과 손의 조화운동 등은 이들에게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훈련들이다.
『서로서로 돕는 것을 보면 눈물이 날 때가 많아요. 손이 구부러져 바지를 내리기도 쉽지 않은 어린이를 몸은 성한 어린이가 도와주어 변기까지 데려가곤 합니다.』유 교사는『유아원 생활을 통해 정상적인 아이처럼 규칙적인 생활을 해낼 수 있다는 점을 부모가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안타까운 점도 있다. 특수아동에게 필요한 시설이 부족하고 장소도 협소한 것이 가장 아쉬운 점. 병원 등에 비해서는 엄청나게 싼 비용이지만 5백만∼7백만원의 전세방·월세방에 사는 이들이 한달 이용료 3만∼5만원을 부담해야하는 것도 마음 무거운 일이다.
『일반 어린이들에게 어렸을 때의 교육이 중요하듯이 이들에게도 어릴 때부터 지속적인 교육·훈련이 필요합니다. 많은 후원자·자원봉사자들이 도와주고 있지만 장기적 사업을 해나갈 수 있도록 국가 보조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뇌성마비 복지회 부회장 겸 오뚜기 유아원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김순녀씨(59·여)는『앞으로 미 취학자 어린이뿐 아니라 뇌성마비 청소년과 성인까지 돌볼 수 있는 센터 건립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한다.<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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