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된 언어로 고뇌에 찬 인간상 표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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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위해 우리는 항상 뭔가를 찾고있지.』에스트라 공은「고도를 기다리며」블라디미르에게 말한다.
지난 22일 사망한 아일랜드출신 작가 사뮈엘 베케트는20세기 파란의 역사를 경험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영원히 나타나지 않는「고도」가 누구인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극도로 개인주의적이고 사생활을 전혀 내보이려하지 않은 베케트는 지난7월 그의 부인이 죽고 난 뒤 호흡 장애와 노령으로 입원해온 것으로 알러졌을 뿐이다.
베케트의 몇 안 되는 친지들은 26일 몽파르나스 묘지에서 있은 그의 장례식에 누가 참석했는지, 직접적 사인이 무엇인지 전혀 밝히지 않은채 깊은 애도만 표시하고 그것이 고인의 뜻이라고만 전하고 있다.
베케트는 그의 선배이자 스승인 제임스 조이스와 마찬가지로 정치적·예술적 자유를 찾기 위해 고국 아일랜드를 떠나 파리로 망명한 뒤 줄곧 파리에서 불어와 영어로 작품활동을 해왔다.
그는 38년 첫 소설『머피』를 발표한 뒤 거리에서 괴한의 칼에 찔려 상처를 입었고 이때 그를 병원으로 옮겨준 피아니스트 쉬잔 데쉬보-뒤메질과 결혼, 아이도 없이 평생 단둘이 파리의 조그만 아파트에서 은둔생활을 했다.
지난 86년 그의 탄생 8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학회·축제가 전세계적으로 성대히 열렸을 때도 베케트는 아무 행사에도 참가하지 않았고 6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 때도 모든 인터뷰를 거부해 그의 인간적 면모와 사생활은 거의 베일에 싸여있지만 그의 작품들은 수많은 문학적·철학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현대 유럽문명의 퇴락과 2차 대전 등을 목도한 베케트는 자신의 시대와 현실을 모두 극한적인 것으로 파악했으며 그것을 작품속에 그대로 구현해 내고자 했다.
베케트는 현실의 끔찍스런 단면들을 보고 그것을 일상의 언어로는 도저히 그대로 표현할 수 없다고 깨닫고 기존의 틀과 언어관습을 깬 작품을 남겨 최근 자주 거론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해체주의의 원조로 평가받고 있다.
베케트의 작품내용은 고뇌에 찬 외침과 희망없는 인간 존재의 무력함으로 일관하고 있고 자신이『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이라 표현한 영속되는 절망감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이 쓴 희곡을 직접 연출하기도한 베케트는 날카로운 유머로 끝간데 없는 절망감을 순간순간 섬뜩하게 드러내 수많은 문학비평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배우·대사·행위가 전혀 없고 흐릿한 불빛과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깊은 한숨소리만 나봤다가 30여초 만에 끝나버리는 작품『호흡』과 3개의 쓰레기통 속에서 머리만 드러내고 있는 세 늙은이의 절망적인 회상의 모습을 그린 작품『연극』등은 20세기 현대 연극의 충격들이었다.
70년대 다시 산문을 쓰기 시작한 베케트는 81년까지 짧은 문학텍스트를 발표했으나 이후 줄곧 침묵했으며 올해 오랜만에 1천8백1개의 단어로만 만들어진 단편『흥분시키는 정적』을 발표, 2백부 한정판으로 출판됐다. 이 책은 현재 한 권에 1천7백20달러에 팔리고 있다.<채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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