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새 지도자 일리에스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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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루마니아의 새로운 국가권력기구로 등장한 임시정부 격인 구국위원회의장(사실상 대통령)으로 전격 취임한 이온 일리에스쿠(59)는 한 때 차우셰스쿠의 후계자로까지 촉망받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70년 차우셰스쿠 일족의 독선적 행위를 참다못해 이를 공개 비판함으로써 차우셰스쿠의 미움을 받아 영락의 길을 걸었다. 60년대 말 당 정치국원으로 청소년문제와 선전을 담당했던 일리에스쿠는 71년 당 중앙위에서 축출됐으며, 이어 정부내각에서도 쫓겨났다.
중앙정치무대에서 쫓겨난 그에게 새로 주어진 직책은 루마니아 서남부 티미시와라와 북부 소련 국경부근의 이아시 등 보잘것 없는 지방당 책임자 자리였다. 그 뒤 다시 중앙정계에 복귀했으나 그에게 주어진 직책은 수자원 행정위원회 위원장이란 한직이었다.
그러나 이 자리마저도 80년대 중앙당 공식집회 석상에서 차우셰스쿠와 그 아내 엘레나와 언쟁을 벌인 뒤 쫓겨났으며, 그 뒤 한 인쇄공장의 감독관이라는 미관말직을 맡았다.
일리에스쿠가 이 같은 여러 차례의 차우셰스쿠와의 트러블에도 완전 실각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소련 모스크바대에 유학, 소련 지도층 인사들과 상당한 교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소련 공산당 고르바초프 서기장과는 모스크바 유학시절부터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30년 동부 루마니아의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난 일리에스쿠는 이론가라기보다는 기술 관료적 성격이 강한 인물로 당내에선 드물게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 학위를 가지고 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차우셰스쿠과 불화하게 된 근본이유를 그의 굽힐 줄 모르는 강한 개성 때문이라고 평한다. 7O년대 중반 그가 지역당 책임자로 있었던 이아시대의 한 교수는 『그는 차우셰스쿠의 개인숭배를 참지 못했으며, 또 다른 사람들처럼 차우셰스쿠에 대한 비판을 자제할 줄 몰랐다』고 그를 평한다.
그러나 이 같은 불굴의 투사인 그도 지난 봄 루마니아 전직 고위정치인 6명이 차우셰스쿠를 비난하는 공개장을 보냈을 때 이에 동참하지 않은 일이 있어 앞으로 이것이 그의 경력상 하자로 제기될지도 모른다.
지난주 차우셰스쿠 실각 직후 구국위원회가 결성되면서 제1대변인으로 활약해 온 일리에스쿠는 이제 구국위원회 의장으로서 루마니아의 장래를 이끌어갈 중책을 맡았으나 피폐해진 국가경제의 부흥, 극도의 혼란상태인 국내치안 유지, 내년 4월에 있을 자유총선 실시 등 그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산적해 있으며, 그가 이를 어떻게 해결해 나아갈지 주목거리가 아닐 수 없다. <정우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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