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제문화의 청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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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 나라 잘사느냐, 못사느냐 하는 것을 따지는데 있어 GNP만으로 평가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GNP와 함께 그 나라의 문화지표를 평가기준으로 삼는 시대가 되었다.
경제가 우리의 삶을 물량적으로 풍족하게 하는 것이라면, 문화는 삶의 질을 다양하고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새해에 새로 출범하는 문화부는 직제와 기능에 있어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는 다소 미흡한 점은 있으나 그 역할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하루가 다르게 다원화·개성화·자율화·전문화·국제화하고 있는 오늘 우리 사회에서 문화가 차지하는 영역과 비중이 그만큼 넓어지고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정책이란 양질의 문화를 다양한 계층에 공급함으로써 국민 개개인이 삶의 가치를 스스로 확인하게 하는 것이며 나가서는 그들이 창의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도록 뒷받침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문화부의 발족에 앞서 지난 시대 우리 문화정책이 어떠했는가를 한 번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80년대의 문화는 한마디로 관제문화·전시문화로 집약할 수 있다. 국민에게 양질의 문화를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지나친 간섭과 규제를 일삼아 왔고, 대형 문화공간 등 문화시설 확충에만 치중한 나머지 내실이 없는 문화공동화 현상을 빚어왔다.
또 하나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문화의 중앙집중 현상이다. 전체인구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서울지역에 문화시설과 인력의 3분의 2가 편중되어 있다는 것은 이것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신설 문화부가 지향해야 할 목표는 자명하다. 첫째는 문화의 민주화다. 간섭은 적게 하고 지원은 크게 하는, 이른바 「자율문화」의 기틀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문화의 내실화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오늘 우리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문화시설은 전문인력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문화공간의 지속적인 확충도 중요하지만 그 공간을 운영하는 전문인력의 양성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셋째는 문화의 균등화다. 고급문화를 대중화하여 보다 많은 계층이 양질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동시에 지역간에도 그 격차를 줄여야 한다.
머지않아 시행될 지방자치제는 새로운 지방문화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문화부는 지방문화를 보다 활성화하는 방안을 심도있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 밖에도 전통문화의 보호와 전승, 지역사회발전을 위한 도서관·박물관의 운영, 어문연구를 위한 과감한 투자, 국제화시대에 대비한 저작권문제, 국제간의 문화교류 문제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리고 산하에 있는 각종 기관·단체를 재정비하여 새 시대에 맞는 역할과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통일에 대비한 남북문화의 동질성회복을 위해 문화부가 모든 역량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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