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은 인간을 단련시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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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우리는 대학이 개인의 행복을 보장하고 개인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필요충분 조건이라고 믿는 사회에 살고 있다. 학교와 사회의 교육이 온통 입시에 집중되고, 찬바람과 함께 밀어닥치는 입시철의 국민적 관심은 수험생의 어깨를 더욱 움츠러지게 한다. 그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 신화처럼 굳어진 통념 앞에 주눅든 불 합격생 여러분에게 우선 위로를 드린다.
여러분.
그러나 대학입시에 대한 이러한 신화는 우리 인생에 어떤 .상징적 의미를 줄 수 있을 뿐 현실의 모습 그 자체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능력 을 갖춘 사람에게 한두번 실패의 현실적 의미는 시련이다.
긴 인생의 사이사이에 놓인 시험대는 아주 많다. 이제 그 첫번째 시험에서의 성공 여부가 긴 인생전체의 성공여부와 직결되지 않는 컷은 분명하다. 오히려 한두번의 시련이 앞으로 닥칠 수많은 시험으로부터 여러분을 단련시켜줄 수 있을 것이다.
대학은 학술적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곳이다. 개인의 취향이나 성격, 능력이나 재질의 방향이 모두 여기에 적합할 수는 없다. 차라리 드물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눈치나 체면 때문에 적성을 저버리고 대학에 가고자 한 사람에게 이번 입시의 현실적 의미는 인생의 방향 모색이라고 본다.
사회의 요소 요소를 채우는 어떤 일도 성스럽지 아니한 경우는 없다. 여러분이 어느 방향을 선택하거나 그것들은 서로가 맞물려 이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필수적인 일들이다. 그 일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보람을 느낄 때 여러분은 삶의 지혜를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지혜는 학력이나 직업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여러분이 몸담는 사회의 한 부분은 곧 우주의 축소판이기도 한 까닭이다. 프로 바둑 기사·상인·목수가 세상을 보는 시각은·사회학도의 시각만큼 날카로울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시련을 겪거나 새로운 삶의 방향을 모색해야 할 여러분에게 한 아름씩 격려의 꽃묶음을 전해주고 싶다.
그러나 한편 나는 여러분 누군가에게 위로의 꽃다발을 받아야만 될 이유를 가지고 있다. 내게는 여러분과 같이 좌절의 고통을 맛볼 젊음이 없기 때문이다.
많은 어른들은 살아가다 자신의 모습을 살피고는 회의에 빠져들곤 한다. 젊음의 순수, 그 열정으로 꿈꾸던 삶의 모습과는 너무 달라져 있는 현실을 보는 것이다. 이 현실은 한번 한번의 작은 성과에 만족해 거기 에 묻혀 버리게된데서 온 것이다. 그러나 그 불만족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만일 실패 뒤에 그가 가진 작은 것들마저 잃게될까 두려워서다. 또 한번의 실패 뒤에는 다시 어떤 기회도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런 의욕과 시도가 없으니 거기에 좌절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불 합격생 여러분은 다르다. 한두번의 실패 뒤에도 아직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 오랜 준비 끝의 첫 시도인 만큼 실패로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을 것이다. 또 애초에 잘못된 방향이라면 바로 잡기에도 늦은 때가 아니며 좌절이 좌절로 끝나지 않는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여러분이 가진 젊음의 특권이고 내가 서글프게 부러워하는 일이다. 그래서 여러분을 위로하는 어른들의 한쪽 구석에 자리잡은 쓸쓸함도 여러분이 보아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모습을 통해 여러분이 지닌 가능성을 비추어 발견하고 젊은이다운 패기와 도전의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심치선<이화여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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