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과문화

다름의 아름다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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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른 아침 학교 앞 카페에서 곧 유학을 떠난다는 학생을 만났다. 그의 손에는 언뜻 보기에 바이올린을 담은 것 같은 악기 상자가 들려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꼭 1년 전 그 여학생은 유학 상담과 더불어 내게 추천서를 부탁하러 찾아왔다. 추천서가 미국 대학원 입학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잘 아는 그 학생은 완벽하게 관리한 성적과 높은 영어점수를 손에 들고, 미국에서 공부했고 폭넓은 인맥을 갖고 있어 보이는 나를 찾은 것이다.

그러나 너무도 당찬 그에게 나는 내가 직접 가르치지 않아 잘 모르는 학생에게는 추천서를 써주지 않는다고 답했다. 대신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해 내가 만든 '영어로 음악사를 공부하는 모임'에 초대했다. 지극히 실용적인 것처럼 보였던 그 친구가 추천서도 물 건너 간 상황에서 우리 공부모임에 오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참여해 누구보다도 준비된 실력을 보여주었다.

유학 상담을 하러 온 그에게 내 유학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작품에 대해 물어보았다. 야망이 큰 학생답게 그는 대규모의 현대 작곡기법을 사용한 난해한 곡들을 입학원서와 함께 제출하려고 준비해 두었다. 나는 그에게 내가 예전에 하버드대에서 한 첫 강의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서양음악을 배우러 온 나에게 교수들이 요구한 첫 강의 주제는 뜻밖에도 판소리였다. 판소리의 나라에서 태어났지만 평생 바흐와 베토벤만 듣고 자란 나에게 그들은 그들의 음악문화가 아닌 내 음악문화에 관한 강의를 요청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내 유학 초창기였던 1980년대 초는 미국의 학계에 서구 중심의 세계문화 연구에 대해 큰 자성이 일던 때였다. 문화적 '외부인'인 서구인들이 하는 비서구권 문화연구에는 문화적 통찰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태생적 한계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음악은 단순히 자율적인 소리의 현상이 아니라 그 음악이 만들어진 문화에 대한 깨달음이 없이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문화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90년대 초 미국 중부의 명문 미시간대에서 한국학을 개설하며 한국 문학과 음악을 가르칠 교수를 뽑을 때 일이다. 그때 학생들이 1위로 뽑은 후보는 놀랍게도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한 미국 태생의 남성 학자가 아니었다. 한국에서 가야금을 공부했고 미국에서는 음악학을 전공한, 매력적인 한국 악센트를 가진 한국 태생의 자그마한 여성 학자였다. 당시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기 위해, 그리고 미국 문화의 주류에 진입하기 위해 '다름'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던 나에게 그 결과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들은 우리를 당당한 문화 '내부인'으로 대접하려는데 우리는 여전히 자기 문화에 대한 자긍심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날 아침 그 학생의 악기 상자 속에는 바이올린이 아니라 해금이 들어 있었다. 그는 나보다 모든 면에서 한 수 위였다. 1년 전 나와 대화를 나누며 그는 진정한 차별화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차린 것이다. 명민한 그 학생은 자신이 어려서부터 배워 잘 아는 바이올린과 가장 유사하다고 생각되는 해금을 선택해 열심히 연습하고 있었다. 한국적인 요소를 자신의 작품에 가미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바이올린 선상에 해금의 소리를 녹여내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정보에 활짝 열려 있는 요즘 학생들은 기성 사회의 편견과는 달리 세계화의 흐름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오늘도 나는 꿈쩍도 하지 않는 우리 음악교육 환경 속에서 내가 보고 온 더 넓은 세상을 학생들에게 맘껏 보여줄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곤 한다. 그러면서도 다름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끌어안으려는 우리 학생들을 보며 오늘보다는 훨씬 밝은 내일을 꿈꿔 본다.

채현경 이화여대 교수·음악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