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부양」 두 마리 토끼몰이|내년 경제운용계획 어떻게 짜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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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내년 경제운용계획 어떻게 짜였나
정부의 내년 경제운용 계획이 「안정」과 「부양」의 두 갈래를 놓고 격심한 의견대립을 겪은 끝에 「노사안정에 초점을 둔 경제사회안정」쪽에 정책기조를 두기로 방향이 결정되었다.
정부가 이처럼 안정론을 고수한 것은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을 들고 나가기에는 주변여건이 성숙되지 않았을 뿐더러 현시점이 적기가 아니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이는 논란을 거듭했던 환율과 금리에서 일시에 대폭 절하나 인하가 단행되지 않은 데서도 엿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정부의 내년 경제운용방향은 경기난국극복위원회의 설치를 통한 노사안정과 고위공무원의 임금동결 등 자구책으로 임금안정을 도모한다는데 상당한 역점이 두어지고 있다.
그러나 대책의 내용을 뜯어보면 실제 가시화된 부문은 「11·14」조치에 이은 「제2의 경기부양책」이라 할 정도의 것을 담고있는 점이 사실이다.
우선 수출·투자 면에서는 대기업의 수출산업설비금융부활, 수출설비투자에 대한 여신완화와 함께 지난 「11·14」조치를 취한지 한달여 밖에 안돼 무역금융단가를 재 인상했다.
특히 금리나 환율의 경우도 눈에 띄는 조치를 단행하지 않았을 뿐이지 운용방향은 기업들의 요구대로 움직여지고 있다. 실제로 원화의 미 달러화에 대한 환율은 연말에 들어서면서 절하에 가속이 붙기 시작, 이달 들어서만 3원90전이 올랐다.
결국 정부의 이번 경제운용계획은 경기부양에 초점을 두었던 「11·14」조치의 연장선상에서 경기하강에 적절히 제동을 걸면서 안정기조를 유지, 경제력향상을 통한 경제회복도 기대하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좇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정부의 주문대로 내년 경제가 움직여줄 것이냐는 점이다.
정부는 그 동안의 경제침체의 요인이 자기 몫 찾기로 시끄러워진 사회·경제의 불안정에 있었고 이제 이에 대한 자각이 기업가나 근로자는 물론 국민들 사이에 점차 확산되고 있다는 데서 내년에는 노사관계가 진정기미를 보이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노사관계가 제자리를 찾는 일은 간단치 않아 전노조의 출현, 노동운동의 정치화 등 불안요소는 오히려 올해보다 증폭될 소지마저 안고 있다. 또 기업가의 의식전환도 느려 최근경제계의 금리·환율 절하요구가 또 하나의 제몫 찾기라는 비판도 없지 않다.
결국 환부가 아물 때까지 아픔을 이겨내려는 자세가 갖춰있지 않는 한 응급수혈을 한다고 환자가 치유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다.
당면과제 중 첫손가락에 꼽히는 물가문제도 여건은 더욱 좋지 않다. 경상수지흑자 폭이 줄어든다 해도 내년 초에는 생산둔화·재고누증에 따른 기업의 자금난으로 통화는 더 풀 수밖에 없고 그 동안 두자리를 넘는 임금 및 추곡가인상도 인플레를 부추길 우려가 크다. 여기에 내년에는 환율마저 계속 절하추세를 나타내 물가안정에 역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경제가 제 위치를 못 잡는 판에 안정기조까지 흔들리면 각계의 욕구분출은 인플레에 더욱 편승해 최악의 상황이 전개되지 않을까 경계되고 있다.
경기하강의 속도가 빠르면 자칫 경제의 자생력마저 손상될 우려가 커 적절한 대응 방안이 필요한 점도 사실이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경기를 본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느냐에 대한 최근의 정책 논쟁을 보면 각계의 이해가 엇갈린 채 자기주장만 강하고 정부도 그같은 분위기에 휘말려 정책의 혼선을 자초하고 있는 느낌이다.
정부는 모든 여건이 제대로 돌아가도 내년경제는 성장률이 올해수준(6·5%추정)에 머무르는 등 어려운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침체의 터널이 더욱 길어질 것이 분명하다면 국민모두가 시련을 각오하고 절제 속에서 재기의 힘을 응축하는 요령을 터득해야할 것이다.
내년 경제의 향방은 정부의 지나친 팽창주의를 경계하면서 제반정책을 어떻게 일관성 있게 펴 나가느냐에 달려있다. 정책의 혼선을 초래하는 경제팀 내의 불협화음 제거도 현 난국을 극복하는 선결과제다. <장성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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