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경찰에 돈 준 고교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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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0대 비행이나 탈선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우리 사회에서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최근 이들 사이 서울에서 난 2건의 사건은 범람하는 청소년 범죄에 감각이 무뎌진 시민들에게도 새삼스런 놀라움과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19일 서울 강남의 한 고급아파트단지 앞길에서 어머니 소유의 소나타 승용차를 면허 없이 몰고 가다 경찰에 적발된 18세의 고교 3학년생이 『술값이나 하고 잘 봐달라』며 1만원을 단속경찰관에게 주려다 입건됐다.
이 남학생은 경찰에서 『TV에서 경찰이 적발하고도 머뭇거릴 경우 돈을 주고 해결하는 장면을 봤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하루 전날인 18일엔 서울 화곡동의 문방구점에서 역시 18세 된 여고생이 가위로 20대 여주인을 위협하고 금품을 요구하다 이웃주민들에게 붙들렸다.
이 여학생은 지난 1일부터 식품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가 일이 힘들자 하루만에 그만 두고는 집에는 알리지 않은 채 『첫 월급으로는 부모 내의를 사주는 것이라는 어머니 말을 실천하기 위해 내의 살 돈을 마련하려고』 범행했다는 것이다.
이 여학생은 또 여주인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러 전치 2주의 상처도 입혔다고 한다.
결과만 가지고 말한다면 둘 다 해프닝에 가까운 경미한 사건이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그렇게 가볍게 흘려 넘기기에는 너무 심각한 문제를 함축하고 있음을 우리 모두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흔히 「범죄는 그 사회의 거울」이라고 한다. 또 어린이는. 어른을 닮는다. 이들 남·여고생의 단순하고 어이없는 비행은 오늘 우리사회의 병든 단면을 가식 없이 보여주는 자화상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극에 이른 도덕적 타락과 윤리의식의 마비현상이다. 법질서나 공권력의 권위도 「돈」이면 좌우할 수 있다는 황금만능의 가치관,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타인의 재산이나 인격, 심지어 생명까지도 도구로 여기는 뒤틀린 의식구조, 비행을 저지르고도 별달리 죄의식을 못 느끼는 정서 균형의 파탄…, 이 모두가 바로 오늘 뒤틀린 우리사회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는 이번 사건이 우리 사회에서 진지한 자기성찰과 의식개혁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최근 수년간 계속되어온 전환기적 갈등과 혼돈을 수습해 가는 과정에 있다. 사회불안의 큰 요인이 되어온 각종 강력 범죄와 청소년문제에 대해서도 인식을 통일하고 해결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할 때라고 본다. 그리고 실천을 통해 하나하나 가닥을 잡아가는 작업이 시급하다.
미국이 2차대전후 세계 제1의부강국이 되었으나 60년 후반 심각한 범죄 및 청소년 비행문제에 시달리다 67년 존슨대통령이「범죄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고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국가차원의 대처에 나섰던 전례에서 보듯 절대빈곤의 처지에서 벗어난 다음에는 범죄의 극복이사회의 큰 과제가 되는 것이다.
특히 청소년범죄와 비행은 그들이 그 사회의 내일을 담당할 세대라는 점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다.
여기서 강조되어야 할 것은 청소년문제 해결에 있어서 부모와 가정의 책임과 역할이다. 부모가 가정에서 실천을 통해 도덕과 윤리의 모범을 보이고 자녀들 교육에 노력을 기울여야만 우리 청소년들은 바르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는 점을 모두가 깨달았으면 한다. 도덕적으로 병든 사회가 경제적 번영을 오래 누릴 수 없다는 것 또한 역사의 교훈이다.
건전한 가정의 교육기능 회복은 90연대를 앞둔 우리의 당면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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