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DS, 남의 일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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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헌혈된 피를 수혈 받은 환자가 AIDS(후천성면역결핍증)에 감염된 경우가 국내에서도 처음 발생한 사실은 커다란 충격인 동시에 새로운 경종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이미 AIDS에 감염된 사람의 혈액 속에 항체가 생기기 전인 항체 미 형성기간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현재의 과학기술로 판별할 수 없다니 AIDS에 대한 공포가 수혈 공포로 확산될 우려마저 없지 않다.
그런데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외국에 비해 A1DS환자가 수적으로 비교적 적은 현실에 비추어 수혈에 의한 감염 확률이 약 2백50만분의1 정도로 현저히 낮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혈 자체를 기피할 이유는 못될 것 같다.
현대의 흑사병이라고도 불리는 AIDS에 인간이 뽐내는 첨단과학으로도 속수무책인 항체 미 형성기간이 있다는 것은 인간의 타락한 성도덕에 대한 신의 저주이며 수혈에 의한 감염은 그 희생자로 치부하는 의학자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무력한 숙명론에 빠져 자포자기할 수는 없다. 그 희생을 최소화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최대한으로 경주돼야 한다.
동성연애자를 비롯한 AIDS감염 위험집단들은 자신의 신분이 노출될 경우 받게될 사회적 멸시와 냉대가 두려워 검사를 기피함으로써 질병확산의 위험은 더욱 높아진다.
따라서 이들 잠재적 위험집단이자신의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고도 안심하고 질병감염 여부의 판별을 의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주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생활 주변을 엄습해 오는 AIDS 자체에 대한 경각심도 다시 한번 환기돼야할 것이다.
지난 85년 국내에서 AIDS환자가 처음 발생한 이후 해마다 환자수가 두 배 이상씩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왔고 금년에는 무려 세배나 늘어난 사실은 우리가 경계심을 그만큼 배가해야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현재 국내 감염자 총계 66명을 세계보건기구(WHO) 추계방식으로 환산하면 숨겨져 있는 감염자는 최소 3백 내지 6백명 이상이 되는 셈이다. 노출된 감염자들에 대한 철저한 관리는 물론이지만 이보다 훨씬 많을 숨겨진 감염자들의 실태파악 및 관리가 시급한 실정이다.
그런데 당국의 관리 실태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작년 한햇 동안 AIDS 의무검진 대상자 4만8천여명 중 AIDS 검진을 받은 사람은 겨우 38%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일반 성병검사만 받은 것으로 나타나있다. 또 최근 대전에서는 AIDS특이반응 여성 20명이 정밀 검사를 피해 달아난 일도 있었다.
무절제한 성생활을 통해 AIDS를 퍼뜨리는 반사회적 감염자를 수용할 강제수용시설도 전무한 현실이다.
감염자의 자제, 각 개인의 절도 있고 건전한 생활, 그리고 당국의 철저한 검진과 관리가 앞서지 않으면 이 무서운 질병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음을 새롭게 인식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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