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순과 균형이 중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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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잇따라 제시되고 있는 정부의 노사안정대책을 보면 산업평화 정착에의 강한 집념은 읽을 수 있을지언정 노사안정을 뒷받침할 구체적 시책들이 설득력과 균형을 갖추지 못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자발적 협조를 구하기에는 미흡한데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겁을 먹게 하는 분위기 조성과 물리적 방법에 의한 문제 해결에 치중한 나머지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노동자측의 자제와 협력을 유발하는 쪽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내년 봄의 노사분규에 대비하는 정부의 대책은 고 임금과 저 생산의 경제적 해악과 이에 대한 근로자 측의 무거운 책임을 은연중에 돋보이게 하고 불법노동행위의 엄단을 강조하면서 타율의 낌새가 풍기는 임금인상 자체의 분위기를 선도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14일 청와대회의에서 상공부가 밝힌 생산성 배가대책도 불법노동행위의 엄단, 생산성 범위내의 임금인상, 무노동-무임금 원칙을 재삼강조하고 있고 이 회의에서 노태우 대통령은 불법노사분규에 대한 신속한 공권력 투임을 거듭 다짐했다. 이보다 앞서 정부는 노사안정을 위한 비상대책기구의 설치계획을 밝힌바 있다.
달리 뾰족한 수를 찾기가 쉽지 않았겠지만 이 같은 일련의 대책제시에서 발견되는 균형감각의 부재, 어긋난 수순으로 말미암아 노동자측의 반발을 사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정부는 비상대책기구의 구상을 밝히기에 앞서 노사 양측의 자율적인 노력에 의한 문제해결이라는 대 원칙을 좀더 참을성 있게 고수하면서 이 원칙에 입각한 당사자들의 노력을 종용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어야 옳았다. .
14일 전경련회장이 정부차원의 노사안정비상기구보다 노사쌍방만의 협의기구가 더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힌 것은 이런 맥락에서 한층 합리적인 선택으로 평가된다.
분규의 한쪽 당사자인 기업의 경우는 좀 다르겠지만, 적어도 정부가 무노동-무임금을 강조할 때는 그것이 의미하는 불노부득의 원칙을 비단 노동현장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서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함께 천명해야 비로소 설득력을 지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임금인상률의 상한선으로 쉽사리 제시되는 노동생산성은 비단 노동의 질뿐만 아니라 기업투자로 결정되는 노동장비의 양과 질에 의해 더 크게 좌우된다는 점을 감안, 저생산성의 책임을 오로지 노동자에게만 추궁하는 듯한 인상을 주지 않도록 해야한다.
그 동안 여러 차례 강조돼온 것이기는 하지만 노동자들의 「일할 마음」을 부추겨 산업평화를 굳건한 초석 위에 울려놓는 근본대책은 뭐니뭐니해도 10년간 노동을 하면 작은 집한채 정도는 살 수 있다는 희망이라든가, 우리 사회는 공정하고 정의롭다는 믿음을 노동자들에게 심어주는 것이다.
노사안정화대책은 이런 믿음을 주는 작업과 불법엄단의 강경책이 하나의 묶음으로 제시돼야지 지금까지 보아온 것처럼 한쪽은 허술한 채 공권력발동의 경고남발이나 인위적으로 분위기를 몰아가는 방법만으로는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앞으로 정부의 노사안정대책은 이런 관점에서 보완의 손질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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