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알수 없는 경제정책 최철주<경제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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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뒤숭숭한 분위기다. 수출 부진으로 삐거덕거리는 경제가 밑도 끝도 없는 비상조치설까지 좇느라 한바탕 소동을 벌이는 판국이다. 경제각료들이 이틀이 멀다하고 회의를 거듭하는 품으로 보아 결코 예사스럽지 않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여기게끔 되었다.
90년대를 여는 내년 새해 계획을 짜던 국영·민간 기업인들 뿐만아니라 정부관계자들마저 어리벙벙한 상태에 있다. 줄곧 내리막길에 있는 주가를 떠받치기 위해 한국은행 돈을 무제한으로 풀겠다는 상상조차 할수 없었던 조치가 이미 내려졌으며 그리고 이어서 2탄, 3탄의 깜짝쇼가 진행될 것이라는 소문도 나돈다.
경제정책의 주요 뻐대인 환율과 금리가 쇼에 등장할 차례라고 관객들 (기업인들을 포함한 국민)은 믿고 있으며 이를 너무 오래 기다린 나머지 경제생활이 뒤틀리는 현상이 나타나 이러다간 무슨 큰일이라도 일어나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은행간 외환시장에서는 달러화의 「사자」 「팔자」 가격이 조정되지 않아 거래가 마비되는 사태가 빚어지고 무역하는 사람들은 환율이 곧 오를 것으로 생각해 수출을 늦추는가 하면 금리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금년들어 경제기반이 더 허약해진 원인을 원화의 과도한 평가절상에 돌리건, 또는 높은 임금인상이나 정부의 일종의 페론주의 정책에 떠넘기건간에 이제는 누구 책임이 큰가를 따질 계제가 아니다.
임금·금리·환율·증시부양 정책등과 관련해 집권여당과 정부·업계는 지금까지 심각한 이견의 집단화를 보였다. 한 집단끼리만 똘똘 뭉쳐 자신들의 주장에서 성큼 물러서거나 상대쪽의 견해를 수용할 의도조차 아예 없어 보인다. 불가침의 영역고수 주의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관계당국자 대책회의라는걸 되풀이해 연들 이견이 조정될리 만무하다.
그러다가 막판에 몰리면 12일 증시부양 대책과 같은 메가톤급 조치가 특정부처의 「소신」 으로 발표된다.
분당 시범단지 분양방법도 자금흐름의 검토없이 결정됐다.
정부는 청와대 비서관들의 조정기능을 월권으로만 받아들이는 일이 잦아졌으며 청와대쪽은 관계부처 관료들의 고식적 사고에 화를 내왔다.
여당은 정치논리로 경제문제를 밀어 붙이려다 행정부와 충돌했다.
또 행정부는 업계가 너무 엄살을 부린다는 이유로 잘 상대해주지 않았으며 기업인들은 행정부를 제치고 여당 당직자들을 찾아가는 원공법을 썼다.
이루어져야 할 곳에서 깊은 대화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어느 쪽을 둘러보아도 이해가 조정되는 기능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들은 지난 3년동안 분에 넘치는 12% 성장을 해왔다. 그것은 우리의 경제실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3저현상이 안겨준 것이었다. 아직은 우리의 생활이 포니자동차 수준인데도 더러는 벤츠수준의 생활욕구때문에 노사간의 분쟁이 쉽게 가라앉지 않으며 이해조정에도 장시간이 소요된다.
정부일각에서는 지난달에 한국이 OECD (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할 시기를 적극 검토하다가 허겁지겁 취소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우리가 선진국 그룹에 진입할 수 있는 단계에 있다고 어줍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
외국기업들이 우리 주변에서 점차 철수하는 것을 두고 외국신용기관들은 한국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해석하고 있다.
현경제상황에 대한 정부및 관계당사자의 제각기 다른 시각을 조정하기란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일것이다. 그러나 일을 처리하는 자세에서 과거와 다른 커다란 차이점이 드러난다. 아무도 책임을 지지않으려는 면피성 행정처리가 눈에 띈다.
주요 정잭에 대해 매듭을 지을건 빨리 매듭을 짓고 가부간의 내용을 국민들에게 설명해 주어야 경제가 막힘없이 흘러가지 않겠느가.
가닥을 풀어가기 어려운 정책은 그 토의일정이 미리 예시되어 경제생활에 참고될 수 있어야 한다. 어느날 갑자기 꽝 하는 식의 대책은 십중팔구 혼란만을 가져온다.
경제부처가 대내외적으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 환율이나 금리정책에 대해서 가타부타 분명한 공식입장 표명이 있어야 각 분야에서 내년 계획이 짜여질 것이다. 정부·여당이 내부의 이해조정마저 실패해 이 문제에 대해 계속 시간을 질질 끈다면 역시 「물 정부」 로 남게 될 것이다.
여·야당은 올해 예산에 농가부채 경감 대책비 2천억원을 계상해놓고도 1년내내 구체적 경감률에 합의조차 못해 그들이 「존경하는」 농어민들의 증오를 사고 있는 현실을 깨우쳐야 한다. 국회에서도 서로의 주장이 맞부닥쳐 이해조정은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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