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량확대로 추곡수매 값 떠받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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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쌀 수매를 둘러싸고 막바지 진통을 겪고있다.
실상 올해 쌀 수매에 관한 원칙은 진작부터 가닥이 잡혀있었다. 수매가의 대폭인상보다는 수매량 확대가 더욱 중요하다는 인식은 수매가 결정과 관련된 각종 상황을 볼 때 당연히 갖게끔 되어있다.
정치권인들 이를 모를 리 없지만 저마다 선심 쓰듯 주장해 놓은 소리들이 있어 이보다는 훨씬 낮은 수매가 인상폭을 스스로 정하기가 껄끄러워 시간을 끈 느낌조차 든다.
여야 4당간에 절충, 중인된 추곡수매는 가격에서 정부 원안을 대체로 수용한 대신 수매량을 대폭 확대하는 상식 선에서 매듭 될 전망이다.
통일계와 일반계의 차등폭 확대, 일반계 수매량의 확대는 정부안 확정이후에도 농림수산부로서는 내심 바라왔던 바이고 보면 국회와 정부간에 상당한 정도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할 수 있고 이는 그만큼 주변여건에 선택의 폭이 좁았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수급불균형이 가시화된 상황에서 아무리 정책가격이라 해도 시장기능을 무시하고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88년의 대풍이후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공급과잉현상은 올해도 수요보다 2백만섬을 웃도는 쌀 수확이 이뤄짐에 따라 보다 심화됐다.
이에 따라 지난 7∼8월의 단경기에도 하락세를 보인 쌀값은 최근에도 산지 시세가 작년 수매가를 밑돌고 올해 수매가보다는 1만원이상 싸게(일반계 2등 기준) 형성되는 등 시장가격과 정부수매가의 괴리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수매가의 대폭인상은 작년의 고추파동에서 보았듯 유통 상인이 담당해온 시장기능을 마비시키고 수매압력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따라서 수매가 인상폭을 적정 선에서 유지하고 수매량을 대폭 확대, 묶어둠으로써 쌀값을 받치는 것이 훨씬 중요했고 이같은 판단이 일반미 수매량을 정부안 3백만섬의 2배인 6백만섬으로 끌어올리는 배경이 됐다할 수 있다.
그러나 통일계의 전량수매는 정부안과 실질적으로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원칙포기라는 점에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물론 올해 통일계 쌀 생산량이 6백46만섬으로 이중 자가소비분을 빼면 약 6백만섬이 수매에 응할 것으로 보여 정부가 이미 예시했었던 5백50만섬 수매와 대차는 없다. 또 올해가 수매량 예시제가 실시된 첫해라 농민들의 이해가 부족했으리라는 점도 수긍이 간다.
그러나 이같은 원칙의 포기가 정책수행에 대한 불신의 온상이 되는 것이고 더욱이 통일계의 감축이 쌀 생산정책의 한 줄기인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보다 분명한 정책수립과 철저한 이행이 요구된다.
올해 추곡수매를 둘러싸고 벌어진 진통이 보여주듯 앞으로의 양정은 일대전환이 요구된다.
무엇보다도 수급불균형의 해소가 선결과제다. 속단키는 어렵지만 쌀에 관한 한 최근의 생산 패턴을 볼 때 공급과잉현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수급불균형의 해소는 생산과 소비 양쪽에서 동시에 접근해 들어가야 한다. 쌀 가공식품의 개발, 학교급식 확대 등을 통한 국민의 쌀 선호 유도 등 소비확대에 대한 꾸준한 노력과 함께 쌀 생산조절을 위한 장기적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단위당 생산성을 높이고 미질을 개선하는 기술개발 노력을 펴 안정적 공급기반을 확보하면서 장기수급 전망을 토대로 생산을 조절하는 방안이 시급히 검토돼야 한다.
1차적으로는 소비자들이 찾지 않는 통일계의 생산을 수매량 예시제(확고한 이행을 전제로), 차등가격제 등을 통해 줄일 수 있도록 유도하며, 통일계를 모두 일반계로 바꾼다해도 70∼80만섬의 생산감소 정도일 뿐이고 또 전남·경남 해안 등에서 통일계 재배가 불가피한 점등을 고려해 전체적인 식부면적에 대한 합리적 재검토가 이제부터라도 진해돼야 한다.
이같은 정책은 소비촉진에 관한 적극적 노력이 전제가 돼야함은 물론이다.
수급불균형이 상존하는 한 정부의 양곡관리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그로 인한 부담은 결국 농민을 포함한 국민 모두가 짊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현재 농가소득의 34%를 차지하는 쌀 하나를 갖고서 농촌의 소득정책을 펴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늘의 양정은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태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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