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차례나 고친 「새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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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소비자 단체들의 고발 창구에 앉아 있노라면 온종일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 자동차관련 고발사례들이다.
한국소비자보호원에 지난 2년여간 피해구제를 신청한 단일제품 중 가장 많은 사례가 자동차이고 보면 우리의 생명과 직결된 자동차를 생산하는 업체들의 얄팍한 양심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자동차를 가진 사람이면 대부분 하자보수를 받기 위해 직영정비공장에서 새벽 4∼5시부터 줄을 서 하루종일을 허비하며 울분을 터뜨린 적이 있을 것이다. 임시 번호판을 채 떼기도 전에 줄줄이 밀려드는 결함 차량들을 보면서 자동차 회사들이 과연 문명의 이기를 생산하고 있는지, 흉기(?) 생산전문업체인지 구분이 안가기도 한다.
서울 옥수동에 사는 한 주부는 새차를 구입하자마자 무려 17회의 애프터서비스를 받았고 결국 회사측도 『결함의 이유를 모르겠다』며 두 손을 들어 8개월의 투쟁 끝에 환불받았다.
그러나 정작 가해자의 장본인들인 자동차 3사 측도 할 말은 있다. 『자동차가 2만 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어 모든 차량에 결함이 없다면 그 또한 이상한 게 아니냐』고 반문한다.
새로 출고된 자동차에 문제가 많다고 떠들어봐야 소비자들은 결국 그들 메이커에서 차를 살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생각을 업자들이 혹시 한다면 곤란한 일이다.
자동차에는 인간의 생명이 걸려있기 때문에 자동차에 결함이 생기면 국민의 생명을 우려해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처리하는 미국·일본 등의 제조회사들과는 달리 국내업계가 만의 하나라도 쉬쉬해서 문제점을 가리기에 바쁘다면 절대 안될 일이다.
또 모양과 내용을 약간 변경한 신제품들이 성능시험·충돌시험 등 안전관련 시험조차 받지 않았다니 소비자의 안전은 과연 누가 지켜주는지, 정부는 누구편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더구나 수출 주종품인 우리나라 자동차가 미국 등에서도 불신을 받기 시작했다니 정말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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