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족한 대책 없이 "지켜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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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5공 청산 3야의「청산구상」>
5공 청산문제를 대하는 야당 측의 주름살이 깊어지고 있다.
야당주변에 자리잡았던 낙관론이 이젠 쑥 들어간 상태다. 노태우 대통령이 귀국하면 뭔가를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허물어지고 여권이 일방종결선언 쪽으로 다가서고 있다는 의구심이 팽배해 있다.
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정국의 흐름이 점차 일방적인 종결선언 쪽으로 기우는 측면이 있다』고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대 민정당 창구인 김원기 총무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뒷받침하는 상태다.
5공 시절 막판 합의개헌을 포기했던 4·13조치직전과 비슷한 분위기가 감지된다는 얘기가 심각하게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야당으로선 다음단계 대응책을 섣불리 제시할만한 처지에 있지도 않다. 일방종결선언을 하면 노 정권 퇴진운동 쪽으로 갈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그것도 간단치 않다. 현재로선 민정당의 최종 카드를 기다리면서 노 대통령을 여야협상테이블로 다시 끌어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노 대통령이 자신이 빠진 여야협상을 지시한데 대해 김대중 총재는 이미 『유럽순방을 하다보니 붕 떠있는 상태가 아니냐』며 국내 정치판을 외면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민주·공화당 측도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서지 않는 한 문제해결이 불가능하다』고 책임회피를 연일 비판하고 있다. 당직자차원의 5공 협상은 오래 전에 한계에와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런 상황임에도 노 대통령이 5공 협상의 최종 결정자 위치에만 서려는 태도는 5공 청산의 공이나 책임 모두를 공유하려는 야3당총재의 의도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으로 야당 측은 분석하고있다.
이를 평민당의 한 당직자는 『노 대통령이 일대 정치적 모험을 하고 있다』고 꼬집고 있다.
여하튼 야당 측은 노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을 어떻게든 끌어내 담판을 짓겠다는 생각이다. 더 이상 뾰족한 방법도 없다.
김대중 총재가 『과거 노 대통령을 만나보니 합리적이어서 5공 청산문제에 이치에 닿는 얘기를 교환하다보면 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한 것은 영수회담 개최를 강하게 재촉한 대목이다.
평민당 측은 여야합의로 5공 청산을 해야 그이후의 정국상황에 대해 공동의 정치적 대처가 가능함을 영수회담에서 설득시키겠다는 입장이다. 합의종결이 돼야 5공 청산이 미흡하다고 들고 나오는 재야 측의 설득을 야당 측이 맡을 수 있고 청산 이후의 정국전개에 대한 보장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평민당 측의 영수회담집착도 민정당 측과 마찬가지로 어차피 합의종결이 안 되는 것을 염두에 둔 노력의 표시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재야와 광주 쪽에 이만큼 노력했는데도 민정당 측이 거부했다는 명분축적의 의도도 깔려있다고 보여진다.
이에 비해 김영삼 민주총재의 대응은 다른 차원에서 전개될 것이라는 전망도 대두되고 있다. 그가 이원조 의원의 사퇴를 고집스럽게 물고 늘어지는 것은 단순한 평민당과의 경쟁심리차원을 넘어 5공 청산타결이 불가능함을 감지하고 다음 단계 포석을 위한 준비단계의 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김영삼 총재 쪽 사람들은『국면타개를 위해 비상수단을 내놓기에 앞서 갈등을 최고조로 몰아가는 김 총재의 스타일이 엿보인다』고 얘기하고 있다.
김 총재의 비상수단은 박준규 민정대표가 『일부 야당도 총선거문제를 거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있다』는 대목과 일치할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퍼지고 있다.
김 총재는 4당 구조체제에 의한 5공 청산의 한계를 오래 전부터 느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의 구상 중엔 민주·공화당과 양심보수세력과의 규합을 통해 정치판 전체에서 5공 세력을 몰아내야 한다는 구도를 짜고 있는지 모른다는 추측도 있다. 보수대연합을 조기에 실시, 정계개편을 통한 5공 청산론이다.
이렇듯 야당 측은 나름대로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으나 곁으로 드러낸 것은 아직 없는 상태다. 이미 청산이 안되면 정권퇴진운동·중간평가실시요구를 야3당 총재합의로 못박고 있어 다른 방안을 꺼내기도 어렵다. 그만큼 일방종결이후운신의 폭이 좁은 상황이다. <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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