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장쩌민 문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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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990년대 중국에서 유행한 유머 한 토막. 하루는 리펑 총리가 회의를 마치고 귀가했다. 부인이 물었다. "오늘은 무얼 논의했나요." "몰라." 뜻밖의 답이었다. 부인이 "온종일 회의하고도 모르느냐"고 되묻자 리펑이 투덜거렸다. "다들 상하이 사투리로 말하는 바람에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상하이 출신 상하이방(上海幇)이 중국 지도부를 장악했음을 꼬집은 유머였다.

당시 상하이방의 으뜸은 장쩌민 주석. 베이징 외교가에서 그는 '삼다(三多)' 선생으로 불렸다. 말 많고, 노래 많이 부르고, 춤 많이 춘다는 뜻에서였다. "함께 춤을 추실까요." 장은 2002년 중국을 찾은 메가와티 인도네시아 대통령에게 '댄스 외교'를 펼쳤다. 장의 노래 실력은 김대중(DJ) 전 대통령도 인정했다. 98년 중국을 방문했던 DJ는 "다른 건 모르겠는데 노래는 장 주석한테 진 것 같다"며 웃었다. DJ 환영 만찬에서 장은 중국 민요를 멋지게 뽑았다.

장의 다변과 관련한 유머도 많다. 그중 하나. 장은 외빈 중 두 나라 손님은 꼭 자신이 만나야 한다고 고집을 피웠다. 미국과 일본이다. 미국 대표단은 장 본인이 영어를 잘하기 때문에, 일본 사람은 역사를 모르기에 자신이 가르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일본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지금도 "역사를 거울로 삼아 미래로 향하자(以史爲鑑 面向未來)"다.

장의 말과 글을 담은 '장쩌민 문선(文選)'이 며칠 전 출판됐다. 문선은 중국의 위대한 지도자에게 주어지는 영예다. 당중앙문헌편집위가 편집하고, 인민출판사가 출판하는 문선이기에 마오쩌둥.덩샤오핑 등 몇 안 되는 인물에게만 붙여졌다. 마오 선집은 5권, 덩 문선은 3권이다. 장은 준비는 많이 했지만, 덩을 넘을 수는 없어 3권으로 했다고 한다.

관심을 끄는 건 발간 이유다. 장의 역사적 공헌을 문선으로 보장하기 위한 것이겠지만 그의 정치적 영향력 만회용이라거나 팔순(17일) 축하용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문선은 학습용 의미가 크다. 덩 문선은 개혁 사상을 드높이는 게 목적이었다. 장 문선의 핵심은 '3개 대표론'이다. 중국 공산당이 생산력과 문화, 광대 인민의 근본 이익 등 세 가지를 대표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당이 사영 기업가도 끌어안는다"는 것으로 기업 친화적 공산당이 되겠다는 이야기다.

중국 진출 한국 기업 수가 3만 개에 달한다고 한다. 한국 떠나 중국 가는 이유가 다 있었던 게다.

유상철 국제부문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