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빈|입시지옥 탈출의 세 가지 가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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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학입시가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1년, 아니 10여년의 학교생활을 오직 이 하루의 시험을 치르기 위해 살아온 입시생이나 이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헌신적 노력을 아끼지 않았을 부모들 모두가 불안과 조바심으로 맞을 대학입시가 눈앞에 다가선 것이다.
입시전쟁과 시험지옥으로 비유되는 이 암담하고도 길고 긴 터널을 한번도 아닌 두번 세 번씩 통과해야 할 부모들로선 이보다 더한 형벌이 세상에 있을 수 없다.
공부를 잘하면 잘하는 대로 걱정이고 못하면 못한 대로 걱정일 수밖에 없는 이 속수무책의 입시전쟁을 해결 할 길은 정말 없는 것인가.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학부모 치고 교육전문가 아닌 사람이 없고 외국의 명문대학에서 다년간의 연구와 박사학위를 취득한 교육학 박사와 교육정책 연구자들이 어느 나라 못지 않게 화려한데도 왜 우리의 대학입시문제는 단 한번 개선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은 채 『성적이 행복순은 아니잖아요』를 외치며 자살하는 중·고생이 늘어가고 있고 대학의 문턱은 날로 높아만 가고 있는 것인가.
지옥과 전쟁을 방불하는 입시와 시험의 늪 속에서 한치도 발을 빼지 못한 채 이대로 지날 수밖에 없는 노릇인가. 교육제도가 잘못되어 우리의 교육이 엉망진창이라고 탓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상에 둘도 없는 이 치열한 교육열기가 살아있는 한 어떤 제도도 그 열기를 진정시킬 수 없다는 체념에도 한다.
제도만 탓하고 체념에 익숙해 질 일이 아니라 뭔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봐야만 될 것이 아닌가. 누구나 생각함직한 세 가지 가설을 내세워 해결의 가능성을 한번 타진해보자.
제 1가설.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다는 자본주의 원리에 따라 대학 지원자만큼 대학신입생을 늘리자는 가설이다. 4년제 대학입학정원 20만명에 지원자 80만명이라는 산술적 불균형이 입시전쟁을 유발하는 결정적 요인이기 때문에 공급을 80만명으로 늘리면 전쟁이고 지옥이 일시에 사라질 것이라는 산술적 계산이다.
극단적 체념에서 비롯된 이 가설은 현실성을 상실한 푸념에 지나지 않는다. 20만명의 신입생을 맞는 현재의 대학시설이 이미 중고교의 교실을 연상하는 콩나물 강의실이 되어있고, 교수 1인당 평균학생수가 50명 선을 넘고있는 지금, 80만명을 수용할 대학시설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시설이 갖춰진다고 해도 모두가 대학을 졸업했을 때 이들 고학력자들이 갈 곳은 어디인가. 89년 현재 대졸 출신 실업자가 30여만명, 해마다 취업률은 13%씩 떨어져 입사시험을 위한 재수·삼수가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제1의 가설은 대학과 사회의 수용능력, 국력의 낭비라는 측면에서 현실성을 잃는 홧김의 억지주장이 될 수밖에 없다.
제2가설. 적자생존의 원리에 따라 현행 평준화정책을 백지화시키고 중고입시를 부활하자는 방안이다. 교육은 기회균등을 원칙으로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학습능력을 전제로 한 기회균등이다. 학습의 능력에 따라 중학·고교·대학을 들어감으로써 아무나 대학에 가는게 아니며 학습의 수월성에 따라 중학·고교입시에서 한차례씩 걸러낸 다음 그 중에서 남은 소수의 엘리트만이 대학에 들어가자는 주장이다.
이미 고교생 75%는 사실상 대학진학을 포기한 상태이면서도 25%학생의 들러리 공부를 하고 있는 판에 이 가설을 적용했을 때는 중학·국민학교의 교육까지 25%의 진학 가능성이 있는 학생만을 위한 교육장이 되어버릴 것이다.
월1회 시험도 지겨워 자살과 탈선이 속출하고 있는 터에 주1회씩 시험을 봐야할 처지가 된다면 청소년의 자살률은 급증할 것이고 중고입시폐지 이후 부쩍 늘어난 국교생의 체위는 다시 바싹 오그라들며 학부모들은 적어도 현재의 3배 이상 전쟁과 지옥의 문턱을 넘나들어야 할 것이다.
제3가설. 교육개혁은 점진적이고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기존의 제도를 존속시키면서 보완의 길을 모색하는 전문대 양성책이다.
전후기 대학을 합친 대학응시경쟁률이 4대1이라고 할 때 여기서 대학이란 오로지 4년제 대학만을 의미한다. 전문대 입학정원이 13만명 이지만 여기선 가산되지 않고 있을 뿐더러 문교부 대학정책실의 업무소관에서도 제외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대의 취업률이 해마다 늘어 80%수준이 되었고 학과에 따라선 입도선매의 유치작전까지 벌어지고 있다.
1, 2차 시험에도 낙방한 다음 재수마저 자신 없어 주저하며 선택했을 전문대 졸업생들이 왜 오늘에 와선 사회와 기업에서 이토록 환대를 받게 되었을까.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능력을 갖췄느냐」를 요구하는 사회로 세상이 바뀌어가고 있는 탓이다.
이젠 문교 당국의 정책방향 또한 전문대학의 수도권 증설과 신설마저 단계적으로 허용할 방침이다. 미술문학 연극 음악 사진 디자인…등의 예술분야에서부터 건축·전기·첨단기술, 나아가 외국어 전문의 2, 3년 대학이 나올 추세이고 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무턱대고 우후죽순처럼 전문대학이 쏟아진다고 해서 개선의 방향이 보인다고 할 수는 없다. 굳이 4년제 대학을 응시하기에 앞서 전문대를 선택할 만큼 전문대의 질적 수준, 예컨대 교수의 자질과 교육시설이 향상되어야하고 이를 위한 전문대 자체의 꾸준한 노력이 경주되어야만 한다.
그 다음 4년제 대학을 졸업했든 전문대를 마쳤든 사회와 기업의 평가기준이 학력이 아닌 능력에 따른 평가를 해야한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조건이 갖춰진다면 학부형이나 입시생이 4년제를 고집하러들지 않을 것이고 전문대의 입시일자도 적어도 후기대 시험일자와 같은 날짜에 맞출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전문대학 정원도 20만명을 넘어설 것이니 4년제 대학 20만명+전문대 20만명=40만명의 정원에 응시생 80만명 대비 2대1의 경쟁률로 뚝 떨어지게 된다. 전문대의 질적 향상을 위한 대학자체의 노력과 문교당국의 정책적 뒷받침, 여기에 사회와 기업의 열렬한 호응이 삼위일체로 맞아떨어질 때 우리도 입시전쟁과 시험지옥을 탈출할 수 있는 좋은 세상을 만날 수 있지 않겠는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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