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는 묵살 독자적 결정인지 촉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야권은 정호용의원의 조건부사퇴표명을 새로운 사태변화로 받아들이면서도 표면적으론 묵살하는 태도다. 평민.민주당측은 즉각 대변인 논평을 통해『고려해 볼만할 가치조차 없다』고 일축했다. 정의원사퇴는 노대통령의 결단에 의해 이뤄져야 하며 정의원과는 상대않겠다는 것이다.
특히 평민당측은 정의원퇴진이 광주책임에 의한 것이며 그자신이 어떤 조건을 요구할 위치에 있지않음을 분명히 하고있다. 또 퇴진자체도 「광주」 책임을 제쳐놓은 구국용단등 어떤 평가도부여할수 없다는 입장이다.
야권은 서로간의 경쟁심리도 곁들여 의도적으로 깔아뭉개고 있다. 기본적으로 3야총재합의사항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협상조차 안하겠다는 자세다.
그러나 내심 그의 조건부사퇴론이 독자적 판단에 의한것인지,여권내부의 의사결정과정은 거쳤는지에 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청와대와 민정당수뇌부와의 의견교환끝에 나온것이라면 중대한 상황변화로 보지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퇴진의 본격협상 신호일수도 있으며 정의원 본인의 입을 통해 협상카드를 제시,비중을 높이려는 여권의 전략일수 있기때문이다.
야당측도 자신들이 제시한 청산조건을 「최소한의 요구」 라고 배수진을 치고있지만 꼭 그렇게될수 있으리라고 믿지는 않는것같다. 공화당측은 이미 문선책을다시 거론하고 있고 김종필총재는 『만족스런 결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고 일정수준만 되면 수용할 의사를 비추고 있다.
박준규민정당대표가 지난주 3야총재와 연쇄접촉을 가진자리에서 정의원 사퇴가 이뤄지면이원조의원 문제는 야당측이 양보하고,전두환 전대통령증언은1회에 한해 마무리 하고, 법적청산 문제는 다음단계 과제로 추진한다는 축소 카드를 제시한것으로 알려졌으며 3야당총재의 반응에도 미묘한 차이가 있었던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때문에 정의원사퇴의 세가지조건은 다른형태로 막후채널을통해 본격 절충될수 있을것으로 보는 시각이 야권에는 있다.
이원조의원을 빼기위한 핵심인사 선별처리론에 대해 평민·공화당측은 이미 신축적 자세를보이고 있으며 민주당측만이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 김영삼총재는 『야3당의 요구를 축소·변형하려는 기도를 용납할수 없다』 고 말하고있다.
그러나 이의원에 대한 민주당의 집착은 지난 대통령선거때 정치자금을 통한 야당분열공작의 책임자임을 부각시키려는 것이어서 평민당측과 근본적으로 보는 시각이 다르다.
법적청산문제는 평민당측만이 집요한 일괄타결을 요구하고있고 민주·공화당측은 김대중총재의 의중에 대해 의구심을갖고 있다. 평민당측도 내심 이문제를 어느 수준에서 마무리할 것인가 고심하고 있으며 일정한 보장만 얻어내면 보안법· 안기부법에 대한 개폐시한을 내년초 임시국회로 넘길수밖에 없다는 검토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의원이 제시한 전전대통령의 증언없이 백담사를 떠나는문제는 정의원이 야당측을 겨냥한 점도 있지만 여권전체를 상대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야권은 전씨 본인이「증언없는 환속」이 끊임없는 문제점으로 남을것이라는 점을 알고있을것이므로 신경쓰지않고 있다. 「정의원의 조건」 들은 야3당측의 미묘한 입장차이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것이기 때문에 야당에 내막적으로 혼선을 초래하는 효과도 예상된다.
아무튼 야당들도 그의 사퇴조건이 퇴진을 하지 않으려는 전략적 후퇴에 의한 것이라는 분석을 최우선으로 보고 있다. 무턱대고 퇴진않겠다는 자세는 정치적 혼미의 책임을 뒤집어쓰는만큼 야권에 받아들이기어려운 조건을 내놓고 나름대로의 명분을 쌓겠다는 책략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야당측은 정의원이 던진 5공청산의 볼 (구) 을 받지않고 노대통령과의 담판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자칫 정의원을 상대하다간 협상의 흐름이 뒤범벅이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야3당총재는 청와대회담에 대해 2자건, 또는 4자공동의 회담이건 상관없이 재촉하고 있다. 결국 노대통령에게 모든 부담을 지우는것이 가장 안전하리라는 판단이다.<박보균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