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변화 현지서 체험|북방정책 자신감…가속될듯|EC통합 각국 입장차 확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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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노태우대통령이 유럽 4개국순방을 끝내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국내에선 5공청산문제가 계속 지척거리고 있고 국회가 내년도 예산을 법정기일안에 통과시키지 못하는등 돌아가면 당장 해결해야할 일이 산적해있기 때문이다. 부재중 까다로운 문제들이 해결되어 새로운 기분으로 돌아가려던 당초의 계획은 빗나가고 말았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이 있음에도 노대통령의 유럽순방은 여러가지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우선 방문시기가 절묘했다. 방문일정이 결정되었던 몇개월전만 해도 유럽에서의 변화가 이렇게 갑자기 닥칠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노대통령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지 불과 열흘만에 서독을 방문하여 동독개방후 첫손님이되었고 미소정상간의 지중해 몰타회담을 유럽에서 지켜 볼수있는 기회를 가졌다.
특히 미소정상회담을 전후하여 이번 방문국의 국가원수들이 서로 연쇄접촉을 가졌거나 가질 전망이어서 이들에게 한반도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심어줄수 있었던것은 수확이었다.
노대통령은 정상회담때마다 이제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분단국은 한반도 뿐이며 한반도도 국제적인 화해질서에 동승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한이 페쇄주의를 버리고 개방으로 나서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그러면서 노대통령은 이들 정상들에게 소련과 중국을 통해 북한을 설득해 달라는 구체적인 요구까지 덧붙였다.
영국의 대처총리, 프랑스의 미테랑대통령,서독의 콜총리등은 노대통령의 이갈은 주문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노대통령은 이같은 유럽체험을 바탕으로 귀국후 좀더 적극적으로 북방정책과 통일문제에 접근해갈 것으로 보인다.
6공화국 출범후 내세운 북방정책이 지금 세계정세와 맞아떨어지고 있는 점을 눈으로 확인하고 동구뿐 아니라 소련·중국과도 과감한 접근을 시도할 뜻을 순방중 여러차례 비쳤다.
노대통령은 『미소가 냉전을 종식하자는 마당인데 유독 한반도에서만 냉전이 지속되는 것은 민족의 자존심을 손상시키는일』 이라고 여러번 강조해 귀국후 북한의 개방을 위한 제2의 7·7선언을 선포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노대통령은 또 국제문제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는 기회를 가졌다. 독일의 통일문제만 하더라도 서독·영국·프랑스사이에 각각 미묘한 입장차이가 있음을 확인했으며 EC통합문제역시 간단한 작업이 아님을 알수있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거의 공개적으로 노대통령에게 유럽통합에 대한 상반된 입장을 피력했다.
헝가리에서는 동구권과의 경제협력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는 점을 깨달았다.
정정의 불안은 차치하고서라도 4O년이상 사회주의 마인드에 젖어있는 헝가리인을 상대로 우리가 투자하여 자본주의적 경영을 이식시키는데는 많은 모험과 부담을 져야한다는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노대통령은 이번 순방에서 눈에 띄게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우리의 민주화와 경제력 덕분이라고 말했다. 사실 대처총리나 미테랑대통령은 이점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환대의 또다른 측면이 있음을 유의해야 할 것같다.
프랑스는 만나는 사람마다 고속전철·원자력발전·지하철등 한국에 팔고싶어 하는 분야를 얘기했고,영국은 총리까지 나서서 위스키 관세를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앞으로 혹시 이러한 환대가 우리 국민의 부담으로 되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파리=문창극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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