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자주 - 사대 편 가르기 국내용 정치 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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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전시 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 발언이 정국에 격랑을 일으키고 있다.

역대 국방장관들이 집단으로 반발하는가 하면 정치권은 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 대 한나라당.민주당으로 패가 갈려 논쟁에 휩싸이고 있다. 이라크 파병, 한.미 관계 등과 관련한 노 대통령의 발언이 과거에 그랬듯이 지금 한국 사회는 전작권 환수를 둘러싼 찬반 논쟁으로 분열과 대결의 회오리로 다시 빠져드는 듯한 형국이다.

야당가에선 노 대통령 특유의 '게임의 정치'가 다시 시작된 것이 아니냐고 경계하고 있다. 국정 어젠다를 선점해 정국을 주도하겠다는 노림수가 숨어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하고 있다.

우선 발언의 시기와 방식이 모두 민감했다. 청와대 측은 회견 전날 연합뉴스 측에 전작권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두 가지 주제에 국한해 인터뷰를 하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작권 환수와 관련한 언론들의 보도가 집중되며 반대 여론이 들끓을 때였다. 노 대통령이 이 논쟁의 복판에 서겠다고 작심하고 나선 셈이다.

회견 내용도 "한국 대통령이 미국 하자는 대로 예, 예 해야 하느냐"는 등 논쟁을 유도할 수 있는 공격적인 발언이 많았다. "안보장사 시대에 성공한 일부 신문이 오도하고 있다"는 등의 표현으로 언론을 공격했다.

그 때문에 공세적 발언→반발 유도→편 가르기→지지 세력 결집→주도권 확보라는 노 대통령의 게임 정치가 되살아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전작권 환수 문제를 자신들은 자주파로, 다른 의견은 사대주의파로 이분화시키려는 정치적 의도가 엿보인다"며 "지지도가 낮고 여권 내부 분열도 많기 때문에 전작권 환수로 돌파하려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든다"고 했다. 의도했든 안 했든 노 대통령의 발언 후 지지세력들은 결집하는 모양새다. 당장 대통령의 발언에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지지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법무부 장관 인선을 둘러싼 열린우리당과의 갈등도 '자주'라는 더 큰 이슈 속에 묻히고 있다.

노 대통령의 발언 배경에 9월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행정부 안팎의 강경 세력들을 겨냥한 측면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노 대통령은 2004년 11월에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그들 입장에서 보면 자위적인 측면이 있다"는 공세적 발언을 한 뒤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에 임한 적이 있다.

물론 청와대는 노 대통령 발언에 어떤 정치적 의도도 없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전작권 환수의 본질을 흐리는 반대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는 데도 대통령이 가만히 있으란 말이냐"며 "정치적 의도를 말하는 건 오버를 해도 한참 오버를 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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