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부른 빡빡한 군항일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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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한항공기 트리폴리공항추락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발생한 서울∼강릉행 F28기의 화재사건은 대한항공의 항공기 운항· 정비체제에 구멍이 뚫려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아직 정확한 사고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항공전문가들은 비행기가 활주로를 벗어나 이륙하는 순간 갑자기 추락, 화재가 발생한 점을 들어 이번 사고는 조종사의 계기조작 실수, 기체결함 등에 그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원인=비행기의 이륙동작은 비행기가 활주로 끝 부분에서 엔진을 이륙 추력으로 증가시켜 이륙활주를 개시하는 것으로 시작되며 비행기의 속도는 자동으로 이륙결정속도(V1) 에 도달하고 이어 이륙안전속도 (VR) 에 이른다.
만약 비행기의 속도가 V1에 도달하기 전에 엔진에 결함이 생겼을 경우 조종사는 이륙조작을 중지하고 브레이크를 걸어 기체를 활주로 상에 정지시킬 수 있다. 그러나 V1을 초과한 후 엔진이 정지되었을 때는 남은 엔진의 힘으로 이륙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에 따라 항공전문가들은 김석중 기장 등이 비행기의 속도가V1 을 초과한 후 엔진 등의 결함을 발견, 남은 엔진의 힘으로 조종간을 당겨 이륙했으나 상승각도가 안전각도 (3도)를 넘어서면서 수평을 잃어 추락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항공기조종사들은 이륙활주 개시 후 7분과 활주로 착륙 4분전 등 11분은 가장 사고 위험성이 높기 때문에 이 시간을 「크리티컬 일레븐」 「마의 11분」 등으로 부른다.
따라서 이· 착륙과정에서는 항상 정확한 계기점검이 따라야하며, 조종사는 이륙조작의 안전을 확보, 이륙여부를 결정해야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있다.
◇문제점=제 2민 항인 아시아나 항공이 지난해 운항을 개시하면서 대한항공의 조종사· 정비사 등이 대거 아시아나 항공 측으로 스카웃 되었고 이에 따른 조종사· 정비사 등 전문인력의 부족은 항공종사자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대한항공기의 트리폴리추락사건도 사고기의 기장이 공항관제소로부터 트리폴리공항의 계기착륙장치가 고장이라는 사실을 통보 받고도 안개가 짙은 악천후상태에서 무리한 착륙을 시도하다 추락했다.
대한항공 측의 빡빡한 운항스케줄도 문제. 대한항공관계자들은 국제선의 경우 운항스케줄은 다소 여유가 있기 때문에 충분한 정비· 점검시간이 있으나 국내선은 운항시간에 쫓겨 형식적인 정비· 점검에 그쳐 항상 사고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한항공의 무리한 운항요구도 잦은 사고의 요인 중의 하나. 대한항공은 유류 등 운항비 절감을 위해 조종사들에게 가능한 한 회항을 하지 말도록 요구하고 있는 실정.
교통부의 한 관계자는 트리폴리공항 사고기의 김준호 기장 등은 이 같은 회사측의 구두쇠 경영방침을 따르기 위해 무모한 착륙을 감행하다 사고를 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교통부 등 관련부처의 안전운항확보를 위한 안전점검체제도 구멍이 뚫려있다. 교통부는 항공국 및 서울지방 항공 국 등에 10여명의 정비전문가를 두고있으나 인원· 장비· 기술부족 등으로 매년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안전점검은 형식에 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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