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감축 서두를 일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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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 국방부가 예산 절감을 이유로 유럽 및 한국주둔 미군병력의 감축을 고려중이라고 보도되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미 합참이 유럽주둔 미군 22만 명 가운데 10만 명, 주한미군 4만명 중 50% 정도의 감축을 검토중이라는 소식이다.
우리는 미국이 향우 6년간 1천8백억 달러의 국방예산 감축을 겨냥해 이 같은 검토를 하게 된 배경을 이해 못하는 바 아니다.
더구나 지금 동구에서 거세게 일고 있는 개혁의 바람은 동서 진영간에 군사력 경쟁이나 대치 상태에도 상당한 변화가 올 것이라는 예견을 가능케 하는 분위기다.
아마도 오는 12월초 몰타에서 열리는 부시 미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간의 정상회담에서는 냉전시대의 유물을 청산하려는 갖가지 논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미소 두 정상이 군축문제에 어떤 극적인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주한미군 문제도 필연적으로 본격적인 논의대상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장래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무엇보다도 애당초 주한 미군의 존재이유였던 한반도에서의 전쟁 억지력으로서의 역할과 이 지역 평화에의 기여라는 측면이 차후에도 완벽하게 보장되어야만 한다는 점이 소홀히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기를 원하지도 않고, 또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도 보지 않는다.
다만 미군병력을 감축 또는 전면 철수하더라도 그러한 조치는 남북한과 동북아의 군사력 균형이 깨지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최상의 명제가 존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미국 내에 일고 있는 신고립주의 경향을 경계하면서 최근 소련의 주도로 성숙되고 있는 평화공존의 분위기가 남북한 관계에 있어서도 구체적 결실을 드러내 보일 때까지는 한반도 주변의 군사력 균형을 깨는 어떤 조치도 삼가야 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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