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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왜 지금 누더기 세제를 손보겠다는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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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정부가 비과세.감면 제도를 대폭 줄이겠다고 나섰다. 조세연구원이 발표한 개선안을 바탕으로 8월 말까지 대대적인 정비계획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비과세.감면의 종류는 모두 226가지나 된다. 2002년 재정경제부가 당시 149개였던 비과세.감면을 축소하겠다고 나섰지만 이 정부 들어 되레 77개가 늘어났다. 비과세.감면으로 덜 받는 세금의 규모도 1999년 10조원에서 지난해 20조원으로 늘었다. 전체 세수의 14.5%나 된다.

속성상 비과세.감면은 특혜와 선심의 수단이 되기 십상이다. 정치인들에게는 표심을 잡기에 이만한 호재가 없고, 일선 부처에는 산하기관이나 관련 이익집단에 생색내는 데 이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 직접 지원하는 예산과 달리 예산심의니, 사후보고니 하는 번거로움도 피할 수 있다.

현재 국회에 대기 중인 비과세.감면만도 의원입법 96건과 부처건의 85건을 합쳐 181건에 이른다. 이를 다 들어주면 20조원의 세수가 더 줄어든다고 한다. 국회와 정부가 세금 혜택을 서로 주겠다고 다투는 형국이다. 그러나 줄어든 세수를 어떻게 메우겠다는 얘기는 어느 곳에도 없다.

비과세.감면은 여간해선 없애기 어렵다. 전체 비과세.감면 가운데 절반인 122개는 아예 언제 끝낸다는 일몰시한조차 없고, 그나마 시한을 둔 것들도 연장되기 일쑤다. 한번 생긴 혜택은 곧장 기득권화되고, 이를 없애려는 시도는 해당 이익집단의 로비와 압력을 받게 된다. 반면에 불특정 다수의 납세자들은 비과세.감면의 폐해를 거의 실감하지 못한다. 비과세.감면의 축소가 학계의 주장이나 재경부만의 노력으로 추진되기 어려운 이유다. 이익집단의 반발을 무릅쓸 수 있는 통치권 차원의 정치적 결단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쉽지 않다.

우리는 세제는 단순할수록 좋으며, 비과세.감면은 원칙적으로 축소해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다. 문제는 시기다. 집권 초반부터 밀어붙여도 쉽잖은 일을 하필이면 레임덕 소리가 나오는 집권 말기에 들고 나왔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부족한 세수를 메우기 위한 단기대책이라는 의구심이 앞서는 것도 그 때문이다. 비과세.감면의 개편은 전체 조세제도의 틀 속에서 논의돼야 한다. 잘못된 조세제도를 바로잡겠다는 의지 없이 불쑥 비과세.감면만 손보겠다고 해서는 곤란하다.

현재로선 이미 정해진 일몰시한이나 제대로 지키고, 새로운 비과세.감면을 신설하지 않는다는 원칙만이라도 세우는 게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