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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아버지 학교'를 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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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얼마 전 몽골에 갔을 때의 일이다. 습도가 낮기때문인지 밤하늘의 별들이 마치 자연학습도감의 천체도를 보는 것처럼 너무나 뚜렷하고 선명했다. 내가 북두칠성.카시오페이아.전갈자리 등 별자리를 하나씩 찾아내 이름 부르자 옆에 있던 건축가 승효상 선생이 어릴 적에 학교에서 자연공부를 잘했나 보다고 말을 건넸다. 나는 그저 빙그레 웃고 말았다. 실은 내가 기억하는 밤하늘의 별자리를 가르쳐준 것은 학교가 아니라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비단 별자리만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시간을 계산하는 산수 문제를 푸는 데 내가 몹시 힘들어했던 때가 있었다. 보기에 안쓰러웠는지 아버지가 밤늦도록 내게 푸는 방법을 일러주셨다. 그런데 아버지의 계산법은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방식과 사뭇 달랐다. 아버지의 방식이 더 쉬웠고 그 덕분에 문제를 더 잘 풀 수 있었다.

최근 한국의 아버지들이 평일에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2.8시간에 불과하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한국.일본.미국.프랑스.태국.스웨덴 등 6개 조사대상 국가 중 꼴찌였다. 하지만 자괴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사는 게 너무 바쁘다 보니…"라며 굳이 변명하지 않아도 된다. 2.8시간이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시간만큼이라도 아이들에게 제대로 집중하면 된다.

내가 아버지와 함께 산 세월은 15년9개월이 전부다. 아버지는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세상을 뜨셨다. 하지만 그 절반인 8년여 동안 나는 '아버지 학교'를 다녔다. 그 8년은 병원에서 '암'이라고 사실상의 사망 통보를 받았던 아버지가 투병하며 기적이다 싶을 만큼 버텨낸 세월이었고, 5남매 중 막내였던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 성장통을 앓던 기간이었다. 투병하는 아버지와 성장통을 겪는 아들이 8년 동안 매일 한두 시간씩 마주한 곳이 바로 '아버지 학교'였다.

'아버지 학교'를 다닌 것은 내 인생 최고의 특혜였다. 내가 다닌 '아버지 학교'는 무슨 거창한 현판이 걸린 학교가 아니었다. 교재가 준비되어 있고, 따로 교실이 마련된 학교도 아니었다. 아버지가 몸져 누워 있던 방이 교실이었고, 병든 아버지의 결코 평탄치만은 않았던 삶의 곡절 많은 이야기들이 교재라면 교재였다. 그 학교의 유일한 선생은 아버지였고 유일한 학생은 나였다. 밤하늘의 별자리를 익힌 것도, 나름의 인생 셈법을 배운 것도 모두 거기에서였다. 결국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바로 그 '아버지 학교'였다.

아버지의 존재 이유는 돈 벌어오는 게 전부가 아니다. '아이에게 아빠가 필요한 100가지 이유'를 쓴 그레고리 E 랭은 이렇게 말했다. "아이의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하던 일도 멈추는, 그래서 아이에게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일깨워 주는 그런 아빠가 필요하다"고. 아버지 없는 아이의 사춘기는 '지도 잃은 탐험'과 같다. 아버지의 부재는 아이들에겐 더 없는 재앙이다.

그러니 많은 시간이 아니어도 좋다. 2.8시간이 아니라 한 시간, 아니 30분, 그것도 힘들면 밥상머리에서 단 10분 만이라도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 보자. 그 순간이 모이고 쌓여 아이의 미래를 결정짓는다. 자기 아이에게 마음 쓰지 않는 아버지는 없다. 하지만 마음과 낙하산은 펼치지 않으면 소용없다. 그 마음을 펼쳐 나만의 '아버지 학교'를 열자. 병든 아버지도 했던 것을 사지 멀쩡한 아버지들이 못할 게 뭔가. 학원 보내고 과외시키고 유학 보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밥 먹이고 옷 입히고 용돈 주는 게 다가 아니다. 내가 직접 붙들고 해야 할 일이 있다. 남이 대신해줄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나만의 '아버지 학교'를 열고 그것을 하자.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