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값 비싼 이유 있었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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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재개발.재건축 비리는 시공사 선정부터 분양 단계까지 전 과정에 걸쳐 만연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에 따르면 업체들이 시공사 선정을 위해 사용하는 홍보비만 60억~70억원으로 그 부담은 아파트 분양을 받는 사람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 이수건설의 경우 서울 돈암 재개발구역에서 시공사로 선정되기 위해 총 공사비 990억원 중 22억원을 공식적인 홍보비로 지출했다. 712가구가 입주하기로 예정돼 있기 때문에 가구당 평균 308만원의 비용이 늘어나는 셈이다. 또 조합간부들을 상대로 한 로비 과정에서 브로커가 개입하고, 재개발.재건축 지역 주민을 직접 상대하는 로비가 판치면서 아파트 가격 상승을 더욱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 "조합설립 전부터 분양 단계까지"=검찰 수사 결과 재개발.재건축과 관련, ▶시공사 선정 ▶조합 아파트 건축심의 ▶협력업체 선정 ▶분양 등에서 뇌물이 오간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검찰에서 이번에 기소된 119명 중에는 시공사와 협력업체 임직원 59명, 조합간부 38명, 서울시의원, 교수, 변호사 등이 포함됐다.

서울 양천구 도시계획위원이던 S대 김모(52.불구속 기소) 교수는 목동 지역 조합 건축심의를 통과할 수 있도록 해주는 대가로 건설사 이사에게서 그랜저승용차(3200만원 상당) 한 대와 현금 1000만원을 받았다.

조합 상가를 건설업체에 반값도 안 되는 가격에 넘기는 대신 뒷돈 100억원을 챙긴 조합장과 총무이사, 고문 변호사도 적발됐다. 서울 대현 주택 재개발조합 고문 최모(62.구속 기소)씨 등은 매각을 놓고 조합원들끼리 경매 분쟁이 있는 상가를 건설업체에 헐값에 넘기는 대가로 100억원을 요구해 이 중 현금 10억원을 박스 네 개에 나눠 받았다. 90억원은 당좌수표로 건네졌다. 철거공사 수주 청탁 명목으로 조합장이 돈을 받아 챙기는가 하면 전자제품 납입 계약서를 부풀려 5700여만원을 챙긴 조합 감사도 발각됐다.

◆ "활개 치는 브로커와 홍보업체"=이번 단속 결과는 건설사의 로비가 이원화됐음을 보여준다. 건설사들은 재개발.재건축 조합 임원을 상대로 한 로비에는 브로커를 적극 동원했다.

이수건설은 서울 돈암동 재개발 시공권을 따내기 위해 주민을 상대로는 '아웃소싱(OS) 요원'을 이용하는 한편 "조합 임원들을 설득해 달라"며 16억5000만원을 브로커에게 건넸다.

서울 잠실 재개발 지역에서는 "재건축조합장에게 식당 운영권을 부탁하겠다"며 1억2000만원을 챙긴 브로커도 등장했다. 서울중앙지검 차동언 형사8부장은 "재개발을 추진하면서 각 단계에서 조합이 선택하는 협력업체가 건설사의 브로커 역할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OS요원들을 활용한 주민 상대 로비는 지방에서도 벌어졌다. 부산 대연 재개발 시공자 선정 과정에서 롯데건설은 K기획사를 통해 지역 주민들에게 10억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을 제공한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한 조직이 60명 정도이며 일부는 합숙훈련을 하는 등 강도 높은 교육을 받는다"며 "입소문을 퍼뜨리는 '분위기 조성조', 돈을 뿌리는 '금품 살포조' 등으로 세분화돼 있고 시공권 건당 1억원 정도의 성공 보수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개정된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에 따르면 재건축은 조합 설립 이후 시공사를 선정하도록 했으나, 재개발의 경우 조합 설립 전에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도록 돼 있어 건설사들이 주민을 상대로 치열한 로비전을 편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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