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예술도 이젠 세계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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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문화계 일각에서 일고 있는 몇가지 고무적인 현상은 한국 문화의 해외 소개라는 단순한 홍보적 차원을 넘어 문화 산업으로서의 가능성과 세계 문화 속의 동등한 지위 확보라는 측면에서 크게 주목코자 한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으로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함으로써 한국 영화의 예술성을 세계적으로 공인 받은바 있지만, 이번엔 『죄 없는 병사들』 (정한우 감독)이라는 한국 전쟁 소재의 영화가 미국 필름 마키팅에서 52개국에 2백10만 달러의 수출 계약을 한데 이어 밀라노 영화 견본 시장에서 54개국에 2백30만 달러를 수출 계약키로 확정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 영화의 예술성과 산업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고 할 이 두 개의 「영화 사건」은 침체된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활력과 가능성의 길을 열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문화 또한 수출상품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영화뿐만 아니다. 『또 하나의 만섭집』이라는 저서를 일본의 명문 출판사에서 발간한 이령희씨는 일본 문화의 정신적 요체라 할 수 있는 난해한 시가, 「만섭집」을 이독식 차자문 방식에 따라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일본 학계를 발칵 뒤집는 화제의 연구서로 평가받고 있다.
작가 안정효씨 또한 월남전에서의 자신의 체험을 소재로 한 『전쟁과 도시』를 스스로 영역해 미국에서 출판했고 뉴욕타임스와 LA타임스는 안씨의 작품을 서평과 인터뷰를 통해 크게 평가하고 있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세계적 바이얼리니스트 정경화, 바스티유 오페라단의 음악 감독으로 최근 취임한 정명훈씨의 성가는 새롭게 거론할 필요도 없을 만큼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이미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박범신 작 『불의 나라』가 국내 연극인들의 힘으로 일본 현대 연극의 메카라 불리는 파르코 극장 무대에서 곧 공연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처럼 영화·연극·음악·문학의 각 분야에서 활기찬 비약을 보여주는 문화 현상을 어쩌다가 생겨나는 우연한 일이라고 돌려버릴 수가 없을 만큼 지금의 우리 문화계는 진출과 도약의 눈부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 문화의 새로운 도약, 세계성의 확보, 나아가 세계 문화 속에서의 한국 문화가 자리잡고 그들과의 첨예한 경쟁 속에서 우리의 우수성을 과시할 수 있는 가능성의 보편적 현상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물론 예술 분야의 경쟁은 예술가 한사람의 오랜 세월과 각고의 노력으로 이룩되는 개인적 성취라고 할 수 있지만 그 개인적 성취를 민족의 문화적 성취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사회와 국가의 합쳐진 용의 주도한 문화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홍보 차원의 문화 소개가 아니라 경쟁력이 높은 문화 산업으로 육성하고 닫힌 공간의 폐쇄적 자족 문화로서가 아니라 세계 속의 한국 문화로서의 위상을 세우면서 개인의 예술적 성취를 민족의 문화 성취로 승화시킬 수 있는 정부의 문화 정책이 문화부의 신설과 함께 강력히 검토되고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새롭게 움트고 솟아나는 우리 문화계의 역량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지원하고 육성하느냐에 정부와 문화 단체는 각별한 관심과 중지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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