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 사상 최대 백만명 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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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베를린 AP·AFP=연합】크렌츠 동독 공산당 서기장이 강경파 정치 국원 숙청을 비롯, 대폭적인 정치·경제 개혁 의지를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1백여만명의 동독인들은 4일 동서독 분단의 상징인 동베를린의 장벽 부근에 집결, 현정부 퇴진·자유 선거 실시·언론 자유 등 민주화 개혁을 요구하며 공산 정권 수립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 행진을 벌였다.
동베를린 시민들은 이날 오전 9시30분 관영 ADN통신사 건물 밖에 운집, 베를린 장벽으로부터 불과 1㎞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중앙 광장인 알렉산더플라츠의 집회장으로 평화적인 가두 행진을 벌였다. 3시간 동안 계속된 이날 평화 시위는 동독 관영 라디오와 TV에 의해 생중계 됐다.
동독 당국의 사전 집회 승인을 받아 동베를린에서 열린 이날 시위에는 동독 각지로부터 시위대가 합세, 시위 군중수가 동베를린 전체 인구수인 1백20여만명에 접근하는 전례 없는 대규모 집회로 발전했는데, 동독 관영 ADN통신은 시위대 규모를 50만명으로 집계했으나 집회 주최측과 목격자 및 현장에 파견된 일부 경찰 관계자들은 1백여만명으로 추산했다.
ADN통신은 또 이날 동베를린 외에 마그데부르크에서 4만명, 알텐부르크에서 1만2천명, 로스토크에서 3만명, 그리고 플라우엔과 슐에서 각각 2만5천명과 2만여명이 시위를 벌였다고 보도했다.
이날 동베를린 시위에는 『인민의 눈이 그대들 (당 지도부)을 보고 있다』『우리는 사탕발림이 아닌 진정한 개방을 원한다』『공산당이 아니라 바로 인민이 동독의 변화를 시작했다』는 등 각종 구호가 등장했는데, 한 서방 외교관은 이날 시위를 『지난 40여년간 억눌려온 인민의 거대한 외침』이라고 표현했으며 동독의 저명한 작가인 슈테판 하임도 『40여년만에 우리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았다』고 감격해 했다.
4일의 대규모 시위에 이어 5일에는 동독 주요 도시 가운데 하나인 라이프치히 지역 공산당 책임자가 사임했으며, 또 정부의 한 각료는 「개혁 추진을 위해」 현 공산당 최고 지도부인 당 정치 국원의 집단 사임을 촉구하고 나섰다.
동독 관영 ADN통신은 지난 19년간 라이프치히 공산당 지도부를 이끌었던 호르스트 슈만(65) 서기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현직에서 사임했다고 보도했는데 라이프치히에서는 지난 6일간 대규모 민주화 요구 시위가 계속돼 왔으며 베른트 사이델 시장은 앞서 3일 사임한 바 있다.
슈만의 사임으로 동독 15개 지역당 책임자 가운데 지금까지 4명이 사임했다.
한편 한스 요하힘 호프만 동독 문화 장관은 5일 예술·교육가들과의 회합에서 신임 크렌츠 당 서기장의 개혁 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현 당정치국이 집단 사임할 것을 촉구했다.
호프만 장관은 『우리는 가능한 한 빨리 새로운 정부를 원한다』고 전제하면서 크렌츠 서기장이 개혁 정책을 실질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정치국이 전원 사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독 고위 관리가 현 정치국의 전면 해체를 촉구하고 나서기는 이번이 처음인데 정치국 내 5명의 보수파 정치 국원들이 이번주 중 사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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