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운동, 외곬서 벗어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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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에게 있어 학생 운동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외세 지배에 대한 저항 세력으로서, 현실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독재 권력의 폭거에 항거하는 신선한 민주 세력으로서, 우리 사회의 양심을 대변하고 미래 사회에로의 길을 여는 첨병으로 기능하고 기여했음을 우리는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멀리는 광주 학생 운동에서 4월 혁명을 거쳐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60여년에 걸치는 우리의 학생 운동은 민족 민주 통일 운동의 선구적 중심 역할을 담당해왔다.
그러나 2년여에 걸친 민주화 과정 속에서 운동권 학생 운동은 민주적 개혁 세력이나 이 사회의 양심이기를 거부한 채 비민주적 폭력 세력으로서 탈법적 민중 혁명 세력으로 질주해왔다.
이 폭력의 집단 질주 속에서 동의대 사태가 발생되고, 스승과 제자가 서로의 멱살을 잡는 살벌한 학원 풍토가 생겨났으며, 끝내는 학생이 학생을 때려 숨지게 하는 끝 모를 폭력으로까지 확대되었다.
또 민중 혁명 세력임을 스스로 표방한 운동권은 혁명을 위한 폭력의 미화와 함께 이미 해체와 종언을 고하고 있는 냉전 체제의 낡은 이데올로기에 스스로 발묶여 주사·비주사의 공허한 논쟁 속에서 이른바 혁명 세력의 주도권 쟁취를 위한 내부의 격심한 분열과 혼란마저 겪고 있다.
이 사회의 양심과 민주적 저항 세력의 잠재력으로 기능하기를 기대해왔던 국민적 여망은 이제 불안과 환멸의 눈초리로 그들을 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대학이 대학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고, 대학 운동권이 민주적 양심 세력으로서가 아니라 폭력과 혁명 세력으로 움직이는 한 그들에 대한 국민들의 의심의 눈초리는 더욱 날카로워질 뿐이다.
60년래의 한국 학생 운동사에서 이처럼 국민적 지지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학생 운동이 없었다는 사실에 대학 운동권은 뼈저린 자생과 회한의 자기 비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최근 연세대 학생회가 타 대학 학생들의 노천극장 집회를 거부했던 일이나 설인종군 상해치사 사건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절감하면서 총학생회 임원들이 전원 사퇴한다는 결의는 바로 이러한 자생과 비판의 첫 몸짓이었다는 점에서 크게 환영하고, 앞으로의 움직임에 새로운 기대를 걸어봄직도 하다.
우리가 진실로 바라는 바는, 그 몸짓이 운동권 내부의 갈등이나 학생회장 선거를 위한 인기 전술에서 나온 일시적 호도책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학생 운동의 방향이 이 시기, 이 몸짓을 출발로 해서 다시금 민주 사회의 양심으로, 그러고 이성과 지성으로 충만한 민주적 개혁 세력이라는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혁명이 아닌 개혁 지원 세력으로서, 폭력이 아닌 이성의 목소리로, 낡은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아닌 자유스러운 시대 정신의 첨병으로서 민주화 과정의 역동성을 강화하고 추진하는 쪽으로 기능하기를 기대하는 사회의 여망을 다시금 회복해야 한다.
「학생의 날 60주년 기념 및 백민 학도 l1월 선포 대회」를 갖기에 앞서 국빈의 여망과 다수 학생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새로운 학생 운동의 방향 정립에 각고의 변신 작업이 있기를 당부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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