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교수사회의 잘못된 논문 관행 바로잡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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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를 표명한 김병준 교육부총리는 국회에서 "우리만 잘못했느냐 찾아봤더니 (다른 팀도) 100% 유사한 보고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BK21에 같은 논문을 두 개로 보고하고 과거 논문을 실적으로 올린 데 대한 변명이었다.

다른 부처도 아닌 교육부총리라는 사람이 관행을 내세워 뻗대는 모습이 분노를 자아냈지만 한편으론 이 과정에서 우리 학계의 어두운 단면도 드러났다.

이번에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자기 표절'이다. 대학 학술지에 실은 논문을 학술진흥재단(학진)에 등재된 학술지에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게재하거나 기존 논문의 상당 부분을 그대로 갖다가 새 논문으로 둔갑시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국민대 김문환 총장은 "논문은 꿀단지, 보물단지다. 자신이 쓴 논문을 1000번 다른 데 써도 문제없다"고 말했다. 대학 총장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나올 정도면 자기 표절이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안 간다.

남의 논문 표절은 훨씬 심각하다. 동료 교수나 제자의 논문이 주 대상이다. 해외논문, 심지어 북한 논문을 베끼는 경우도 있다.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사태에서도 드러났듯이 남의 논문에 이름을 올리는 행위도 고질적이다. 교수사회의 이런 풍토가 대학생 사회에도 전염됐다. 논문 대필도 성행하다 보니 숙제를 도와주는 인터넷 사이트가 100여 개 성업 중일 정도다.

표절이나 대필은 명백한 범죄다. 그런데도 기준이나 적발 장치가 없다. 학회 중에서 표절의 개념이나 제재 규정을 갖고 있는 데가 별로 없다. 학술 논문도 양적 성장에 치중해 왔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자기 논문을 조금이라도 인용했으면 반드시 근거를 대야 하고 한두 문장만 비슷해도 표절 시비에 휘말린다. 컬럼비아대는 입학 때 학문의 정직성을 지키겠다는 서약서를 받는다고 한다.

우리 학계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아야 한다. 학교에서 연구 윤리 과목 수강을 의무화하고 대학별로 연구진실성위원회를 설치해 위반 사례가 나오면 엄중히 징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