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계도 전관예우 있었나

중앙일보

입력

복제약의 생리적 약효 시험을 조작한 시험기관 중 한 곳이 식품의약품안전청 초대 청장이 세운 벤처기업으로 밝혀져 파문이 일고 있다. 자료 조작이 확인된 복제약 10개 품목 가운데 5개 품목의 약효를 시험한 랩프런티어가 박종세(63) 초대 식의약청장이 2000년 설립한 바이오업체라는 것이다. 랩프런티어는 현재 다른 11개 품목에 대해서도 자료 조작 혐의가 포착돼 정밀 조사를 받고 있다.

◆ "의약계의 '전관예우'냐"=식의약청은 25일 오리지널 약과 복제 약의 약효가 같은지 입증하는 생물학적 동등성(생동성)시험을 조작한 기관과 문제가 된 복제 약품 목록을 발표했다. 이 중 랩프런티어는 지금까지 조작이 확인됐거나 의심되는 43개 품목 중 16개(약 37%)의 생동성 시험을 수행했다. 특히 이 시험들은 대부분 박 전 청장이 대표로 재직 중이던 2004, 2005년에 수행된 것이다. 박 전 청장은 지난해 말 이 업체의 대표직을 사임한 뒤 현재 한국바이오벤처협회장을 맡고 있다.

또 식의약청의 차장과 독성연구소장 등 고위직 출신 인사들이 주요 임원으로 진출해 있는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도 이번에 부설 생동성시험연구센터가 3개 품목의 시험자료를 조작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을 빚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25일 "시험 결과 조작을 가장 많이 한 것으로 밝혀진 랩프런티어 설립자가 전 식약청장이자 독성연구소장이었다는 사실은 의약계의 '전관예우'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는 성명서를 냈다. 민노당은 "정부 차원에서 철저한 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총 책임자로서 죄송"=박 전 청장은 26일 본지 기자와의 통화에서 "생동성시험은 담당 팀이 거의 책임을 지고 사업을 진행했기 때문에 상황을 전혀 몰랐다"며 "하지만 당시 총책임자로서 (국민에게)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문제가 된 약품의 제조업체들은 "우리도 피해자"라며 앞으로 시험기관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랩프런티어를 통해 골다공증 치료제의 생동성 시험을 했던 한 제약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매출액이 70억~80억원대로 우리 회사의 주요 제품이었다"며 "랩프런티어는 업체 평가가 좋기도 했지만 전 식의약청장이 대표로 있기 때문에 더 믿었는데 이게 웬 날벼락이냐"고 말했다.

지난해 수행된 생동성 시험 272건 중 랩프런티어는 40건을 맡았다. 이번에 함께 적발된 바이어코아(60건)에 이어 둘째로 많은 양이다. 생동성 시험 비용은 건당 5000만~1억원에 이른다.

박 전 청장은 "생동성 시험 기관들 간의 경쟁 때문에 이런 사건이 일어난 것 같다"며 "랩프런티어는 거의 모든 자료를 순순히 제출했기 때문에 더 많이 적발이 됐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일부 다른 기관은 식의약청 조사에 앞서 컴퓨터 안에 저장된 원본을 삭제하는 등 조작 사실을 은폐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랩프런티어의 조작 사실이 많이 드러났을 거라는 주장이다.

◆ 박 전 청장은=존스홉킨스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1988년 서울 올림픽 도핑 컨트롤센터 책임자였을 당시 벤 존슨의 약물 복용 사실을 발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98년 식품의약품안전청 초대 청장이 됐다. 99년 수뢰 혐의로 청장직에서 물러났지만 무죄판결을 받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