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 기자의 약선] 바다의 쌀 정어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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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에서 열린 세계라면총회에 회장 자격으로 온 일본 닛신식품의 안도 모모후쿠 회장. 라면의 창시자인 그는 96세라고는 도저히 믿기 힘든 건강 노인이다. 그는 자신의 건강 비결을 "80%의 포만감을 느낄 때까지만 식사하고, 정어리.전갱이 등 등푸른 생선을 뼈째 먹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덕분에 이가 튼튼해 아직도 틀니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안도 회장이 예찬한 정어리는 '바다의 목초','바다의 쌀'로 통한다. 큰 물고기의 먹이가 돼주기 때문이다. 이들은 바다 속에서 늘 무리지어 이동한다. 이렇게 작고 연약한 정어리가 영양학자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오메가-3 지방.비타민 D.칼슘이 풍부해서다.

이 중 오메가-3 지방은 혈관 건강에 유익한 불포화 지방의 일종이다. EPA.DHA가 여기 속한다. 정어리의 EPA 함량은 등푸른 생선 중에서 최고 수준(100g당 1.4g). EPA는 혈소판의 정상적인 활동을 돕고, 혈전이 생기는 것을 막아 혈액이 잘 돌게 한다. DHA는 뇌를 건강하게 하고, 시력을 개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타민 D는 햇볕을 쬐면 몸에서 만들어지는 '선샤인 비타민'. 피부가 그을리는 것을 꺼리는 여성에게 정어리 요리를 권하는 것은 이 생선의 비타민 D 함량이 어패류 중 가장 높기 때문이다.

비타민 D가 부족하면 그렇지 않아도 낮은 칼슘의 체내 흡수율이 더 떨어진다. 칼슘은 골격이나 치아를 튼튼하게 하는 미네랄인데, 생 정어리 100g당 94㎎ 들어 있다. 이는 '칼슘의 왕'이라는 우유의 절반 수준이다. 특히 뼈와 머리까지 먹는 말린 정어리는 생물에 비해 칼슘이 15배나 더 들어 있다. 말린 정어리를 하루 100g 먹는다면 칼슘의 하루 섭취 권장량을 채우고도 남는다.

서울여대 식품영양학과 이미숙 교수는 "요즘엔 정어리를 천연의 혈압 강하제로 널리 쓴다"며 "양질의 단백질과 칼륨이 풍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단백질 성분인 정어리 펩티드는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혈압을 낮추는 건강기능식품 원료로 이미 인정받았다. 혈압 상승을 유도하는 효소인 ACE의 활동을 방해해 혈압이 오르지 않도록 조절한다는 것. 게다가 혈압 조절 기능이 있는 칼륨도 정어리에 꽤 풍부하게 들어 있다(100g당 440㎎).

다만 정어리 펩티드를 섭취할 때는 하루 6㎎ 이상 먹는 것은 곤란하다. 다른 혈압약을 복용 중인 사람이라면 반드시 의사와 상담한 뒤 먹어야 안전하다. 혈압을 지나치게 떨어뜨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정어리 요리를 앞에 두고 "기름져서 너무 열량이 높지 않을까" 고민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열량이 그리 높지 않다(100g당 생 것은 171㎉, 말린 것은 334㎉). 한 번에 두 마리, 매주 3회 정도 먹는 것은 다이어트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

주의할 점도 있다. 상하기 쉬우므로 신선한 것을 사서 바로 먹어야 한다. 가능한 한 날로 뼈째 먹는 것이 건강에 좋다. 튀김은 바람직한 조리법이 아니다. 오메가-3 지방이 30% 이상 손실된다. 굽거나 조릴 때도 녹아나오는 기름과 함께 오메가-3 지방이 빠져나갈 수 있으므로 너무 오래 굽지 말아야 한다. 조릴 때 생강.식초.매실 장아찌를 넣으면 비린내가 싹 가신다. 특히 식초나 매실 장아찌와 함께 조리면 산의 작용으로 뼈가 연해져 뼈째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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