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 처방률 공개 첫 판결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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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정법원이 감기환자에 대한 의료기관의 항생제 처방률을 공개하라고 판결한 것은 의료 정보 비공개로 인한 편익보다는 공개에 따른 국민의 진료받을 권리가 증진되는 효과가 더 크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보건복지부는 그동안 비공개 결정의 주된 사유로 △의료인의 개인 정보 침해 △요양기관의 경영ㆍ영업상 비밀 침해 등의 주장을 폈지만 재판부는 이날 의료인의 전문성 보장보다 소비자에게 충분한 의료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 판단은 원고측이 내세운 '환자 구성이 고려되지 않은 채 항생제 처방률이 높고 낮은 단순 정보가 공개된다고 해도 의료단체측 주장처럼 의료기관 불신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는 주장을 적극 수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참여연대측은 그동안 "의사와 환자 사이에 심각한 정보의 비대칭성을 감안할 때 항생제 처방률이 공개되지 않음으로써 의료 소비자인 국민의 진료받을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됐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재판부가 비록 여러 질병 중 감기에 국한된 것이기는 하지만 전국 병ㆍ의원, 보건소 등 의료기관과 약국 등 요양기관에 대해 항생제 처방률을 공개하라고 첫 판결을 내림으로써 향후 다른 질병에서도 유사한 청구가 잇따를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원고측 주장대로 무분별한 항생제 오ㆍ남용이 줄어들어 '항생제 사용의 투명성' 향상과 의료 정보의 비대칭성 개선, 국민의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단체들은 정보공개 요구에 대해 "의료기관 및 환자의 특성을 감안하지 않고 일률적인 잣대로 항생제 사용률을 평가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반발해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의협은 법원에 제출한 탄원서에서 "항생제 오ㆍ남용의 개선은 필요하지만 항생제 사용률을 일률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항생제 처방률이 높은 의료기관 = 부도덕한 의료기관'이라는 인식을 심어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의협은 "항생제 사용률이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어느 의사건 환자의 질병 상태를 고려해 적절히 항생제를 처방하는 것이다. 나무에만 집착하지 말고 전체 숲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지부가 의협 등 의료 직능단체들의 반발을 고려해 이번 판결에 불복해 항소할 경우 고등법원에서 결론이 날 것으로 전망되며 판결 확정 때까지는 정보 공개가 지연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법원의 최종 판단과 무관하게 이번 판결은 의료기관 등의 항생제 오남용 실태에 대한 국민적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향후 정부의 제도 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재판장인 권순일 부장판사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의료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토대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는 분위기가 정착될 것으로 기대한다. 공익 증진과 의료계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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