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손동작 따라 로봇손이 그대로…

중앙일보

입력

국내에서도 본격적인 로봇수술 시대가 열렸다.

18일 오전 10시30분 세브란스병원 수술실. 수술대에 누워있는 환자에게 마취를 하면서 수술팀의 손길이 분주해졌다. 로봇의 보조역을 맡은 의사는 환자의 배 네 곳에 1㎝ 정도의 구멍을 뚫고 투관침(套管針)을 삽입해 가스(이산화탄소)를 주입했다. 로봇눈(카메라)과 손이 들어가 자유롭게 수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다.

로봇눈이 복부 안으로 들어가자 로봇에서 3m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집도의의 시야에 환자의 배 속이 3차원으로 펼쳐졌다. 환자가 앓고 있는 질환은 담낭염. 이날 수술은 엄지손가락만 한 망가진 담낭을 잘라 제거하는 것이다.

집도의의 손이 마치 게임기를 조작하듯 '조이 스틱'을 작동하기 시작했다. 배 속에 들어간 로봇손이 의사의 손동작에 따라 정교하게 움직였다. 환부를 자르고, 지혈하고, 꿰매고…. 로봇손은 비좁은 공간에서 360도 회전을 하며 자유자재로 임무를 수행했다. 로봇이 수술을 시작해 9분여 만에 담낭을 밖으로 꺼냈다.

이날 로봇수술을 수행한 세브란스병원 이우정 교수(외과)는 "로봇은 사람 손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공간까지 손쉽게 접근하고, 팔목을 자유자재로 돌리기 때문에 수술이 간단하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로봇수술의 더 큰 장점은 의사의 미세한 손떨림을 제거해 주는 것이다. 마치 잡음을 제거하는 음향기기처럼 컴퓨터가 의사의 불필요한 동작은 배제한다.

국내에선 로봇수술이 이제 첫선을 보였지만 미국에선 이미 신기한 일이 아니다. 2000년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은 뒤 급속히 확산해 현재 수술로봇 300여 대가 보급돼 있을 정도다.

세브란스병원 로봇수술팀에 소속된 나군호 교수(비뇨기과)는 "지난해 6만여 건의 전립선암 수술 중 8000여 건이 로봇에 의한 수술이었다"며 "로봇이 수술을 주도하는 시대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로봇 수술이 가능한 분야는 위암.췌장암.전립선암.난소암.자궁암.폐암.심장수술 등 모든 외과 분야다. 그러나 대중화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25억원이나 하는 고가 장비와 소모품 때문에 치료비가 많이 들 수밖에 없어서다. 로봇손의 경우 개발 회사에서 한 개에 300만~400만원 하는 것을 10회 사용하면 전원이 꺼지도록 프로그래밍했다. 국내에선 1500만~1700만원은 받아야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로봇 수술비는 미국은 건당 7000만원, 싱가포르의 경우 4500만원 선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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