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임이 부끄러우십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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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건강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일까. 남성이라면 금연이 첫손에 꼽힌다. 한국 남성 10명 중 6명이 흡연자며 해마다 4만여명이 단지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만으로 숨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성은 어떠할까. 다소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기자는 피임을 들고 싶다. 성에 대해 엄격한 유교문화 탓이랄까, 한국인의 성은 겉과 속이 다른 이중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정숙함이 강조되다 보니 성행위에 앞서 피임을 내세우는 여성은 자칫 문란한 여성으로 오해받기 쉽다. 그러나 인공중절수술 등 원하지 않는 임신의 부작용은 고스란히 여성의 몫으로 남는다. 해마다 새로 태어나는 아기는 70만명인데 인공중절수술은 1백50만건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낙태율은 세계에서 가장 피임교육이 잘된 국가로 평가받는 네덜란드의 50배에 달하는 수치다.

우리나라 여성 10명 중 4명은 한차례 이상 인공중절수술을 경험한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인공중절수술은 직장을 가진 여성일수록, 학력이 낮을수록, 소득이 높을수록 잦았다. 어느 경우든 피임에 실패한 탓이다. 인공중절수술은 심장이 뛰는 태아를 가위로 산산조각 낸다는 뜻에서 생명윤리에 반하는 행위며 자궁의 염증과 불임 등 여성의 몸에도 두고두고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피임법은 콘돔이다. 콘돔은 약물을 사용하지 않으므로 부작용이 없다는 장점을 지닌다. 그러나 콘돔은 여러가지 피임법 가운데 실패율이 비교적 높은 방법에 속한다. 자연스런 성행위의 리듬이 끊기고 접촉시 성감도 방해한다. 콘돔은 처음부터 풀어버리지 말고 귀두에서부터 둘둘 말아내려가는 방식으로 착용해야 한다. 풀어버린 상태에서 삽입하면 공기가 들어가 찢어질 가능성이 크다. 사정 직전에 끼는 것도 잘못이다. 사정감에 앞서 정액이 일부 배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콘돔은 발기 직후 착용해야 한다.

성생활이 왕성한 젊은 여성이라면 경구피임약을 권장한다. 실제 서구에선 경구피임약이 가장 널리 사용되는 피임법이다. 경구피임약을 생리 조절용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경구피임약은 호르몬 제제이므로 생리를 억제하기 때문이다. 겨울휴가 예정일에 생리주기가 겹칠 경우 거추장스러운 생리를 피하기 위해 경구피임약을 복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안심하고 무방비 상태로 성관계를 갖게 되면 임신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미 배란이 된 경우라면 경구피임약을 한 두 알 먹었다고 피임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경구피임약은 생리 직후부터 3주간 매일 복용하고 1주는 쉬는 복용방법을 지켜야 비로소 피임효과를 얻을 수 있다. 대부분 안전하지만, 간이나 심장이 나쁜 여성에겐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매일 복용하는 방식이 번거롭다면 미레나 등 자궁내 장치나 피부 아래 이식하는 임플라논을 고려해볼 수 있다. 임플라논은 4cmx2mm 크기의 가늘고 작은 봉을 위팔 안쪽 피부 밑에 이식하는 피임기구로 한번 이식하면 3년 동안 피임 효과를 유지하며 임신을 원할 경우 제거할 수 있다. 시술시간은 5분 남짓. 산부인과 등 동네의원에서도 가능하다.

이들 피임기구는 여러 피임방법 가운데 난관결찰이나 정관수술 등 수술을 제외하곤 가장 피임 성공률이 높아 직장을 위해 첫 임신을 미루거나, 터울 조절을 해야 하는 경우에 효과적이다. 임플라논은 자궁내 장치에 비해 자궁에 삽입하지 않아도 되므로 골반염 등의 우려는 적지만 일부에서 불규칙한 질 출혈이 나타나는 단점이 있다.

무방비 상태로 성관계를 했을 땐 응급피임약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성관계 후 72시간 이내 한 알을 복용하며 12시간 후 한 알을 추가로 복용한다. 응급피임약은 반복해서 사용할수록 피임효과가 떨어지므로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해 사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남성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바다. 질외 사정은 가장 실패율이 높으므로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방법이다. 진정 상대방을 사랑한다면 확실한 피임을 위해 남성도 협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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