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WHO에 사스 등급 재조정 촉구

중앙일보

입력

필리핀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등급 재조정을 세계보건기구(WHO)에 공식 요구하고 나섰다.

사스 전염을 우려한 싱가포르, 쿠웨이트 등 여러 국가들이 필리핀인들의 입국을 제한하는 것을 더 이상 두고볼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블라스 F. 오플레 필리핀 외무장관은 최근 장-마르크 올리브 필리핀 주재 WHO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사스와 관련해 필리핀을 '중급 전염 위험상태'로 규정한 WHO의 결정에 항의한 뒤 등급재조정을 요구했다.

중급전염 위험상태란 사스에 걸린 환자를 통해 적어도 3명 이상이 감염된 경우를 일컫는다는 것이 WHO측의 설명이다. 지금까지 필리핀에서는 10명의 사스 감염자와 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날 회동과 관련, 필리핀 외무부 대변인은 필리핀의 사스 감염 위험성이 "무시할만한(negligble)" 수준이기 때문에 여행권고안(Travel advisory)에 포함시킬 필요가 없다는 초기 의견을 WHO측이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올리브 대표의 시인을 받아냈다고 밝혔다.

대변인은 그러나 필리핀에 대한 WHO측의 등급재조종 가능성에 대해서는 "올리브 대표가 최종 결정권자가 아니다"라며 회의적 태도를 보였다.

대변인은 특히 100명 이상의 사스 감염자가 발생한 국가군(群)과 함께 필리핀을 여행자제국 명단에 포함시킨 WHO의 조치는 "성급하고 부당한 처사"라고 비난했다.

여행권고안으로 계속 피해를 당하는데 분개한 오플레 외무장관은 이어 필리핀 주재 싱가포르 대사관의 폴 코 공사를 초치했다.

이 자리에서 오플레 장관은 싱가포르 정부가 지난 9일 필리핀을 여행자제국 명단에서 제외하기는 했지만 사스를 이유로 자국민들에게 필리핀 여행의 자제를 권고한 것은 부당하다는 항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앞서 외무부 관리들은 대만과 쿠웨이트가 필리핀을 사스 중급전염 위험상태로 분류한 WHO의 조치에 따라 필리핀인들의 입국을 금지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관리들은 또 리비아 역시 외교경로를 통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지난달부터 지금까지 사스 감염 가능성을 이유로 필리핀인들의 입국금지 조치를 해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필리핀 정부가 WHO 분류에 발끈하고 나선 것은 무엇보다 해외거주 자국인들의 송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발생하는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이다.

현재 700만명으로 추산되는 해외취업 필리핀인들이 보내오는 돈은 필리핀 경제에 큰 밑걸음이 되어왔으나 각국의 입국금지 조치로 원활한 송금이 어려워지면서 가뜩이나 심각한 경제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오플레 장관과 마누엘 다이리트 보건장관 등 정부 각료들이 잇따라 나서 WHO의 조치에 거칠게 항의하고 있지만 단기간에 사태가 해결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하노이=연합뉴스) 김선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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