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산업 위기 극복하려면] "국내외 항공 규제 고삐 풀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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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불황에 시달리는 항공산업을 되살리려면 항공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고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주장했다. 특히 국내 항공산업에 대한 규제뿐 아니라 국가간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세계 항공산업은 테러.불황에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등이 겹치면서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올해 항공업계 전체의 손실은 1백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코노미스트 최신호(10월 4일자)에 따르면 유럽과 미국에서 저가 항공사들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은 정부의 규제 완화 덕분이다. 1978년 미국은 국내에서 행선지와 비행시간.항공료를 자유롭게 정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 후 20년간 항공 이용객은 1백50% 증가했으며, 항공료는 20% 내려갔다.

유럽도 97년 역내 항공산업을 자유화한 덕분에 라이언에어나 이지제트 같은 저가 항공사들이 탄생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국내 항공산업에 대한 규제완화가 이 같은 혜택을 가져왔듯, 국가간의 대외적인 규제 완화도 마찬가지 효과를 볼 수 있다며, 위기에 빠진 세계 항공산업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하늘을 활짝 개방하라'고 주장했다.

항공산업은 이동시간을 단축시켜 현재의 글로벌 경제를 만드는 데 큰 공을 세웠지만 정작 스스로는 16세기에나 어울릴 법한 중상주의적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항공산업을 국가적 위신이나 특별한 이익이 걸린 분야로 여기며, 규제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60년간 항공사.목적지.좌석수는 물론, 일부에선 항공요금까지 정부간 항공협상에 의해 지배를 받아왔으며, 이는 업계의 비효율과 경영적자를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결국 소비자 이익까지 침해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지난 1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유럽연합(EU)간 1차 항공협정은 이 같은 규제를 없애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이 잡지는 전했다. 미국과 유럽이 세계 항공수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양자가 각종 규제의 철폐에 합의할 경우 나머지 국가도 동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 파격적인 항공요금 인하를 무기로 유럽과 미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저가 항공사들이 등장하지 못하는 것도 부분적으로 이 같은 규제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국내 항공료를 자유화하는 등 대내적인 규제 완화가 상당 부분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현재 부정기 항공운송업이 등록제로 돼 있는 만큼 유럽식의 저가 항공사가 국내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게 규제탓으로만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한국은 철도.도로 등이 잘 구비돼 있어 수익성을 보장할 만한 국내 수요가 불확실하다는 게 더 큰 요인이라는 것이다.

건설교통부 유한준 항공정책과장은 "정기항공운송사업은 한국의 시장 규모 등을 감안해 허가제로 돼 있지만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유과장은 "국가간 규제의 자유화 역시 시장보호적인 측면 등 국익을 감안해 결정할 문제"라며 "예를 들어 싱가포르처럼 강력한 항공사를 보유한 국가와의 양자협상에서 국가간의 규제를 완전히 없앤다면 이는 항공 교통허용량(트래픽)이라는 국가 자산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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