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하지도 않지만 별나지도 않은 병

중앙일보

입력

루푸스 환자들은 이 질환이 유전성이 있는 자가면역질환 이라는 말에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자식들에게 병을 전하지는 않을까 불안과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환자들이 자주 물어보는 질문 중에 우리 가족이나 아이들도 루푸스 검사를 해봐야 할까요? 어제 아이가 열이 났는데 혹시 루푸스가 아닐까요? 루푸스는 치료가 되지 않는 병입니까? 언제까지 치료해야 합니까 ? 치료법이 없다는데 왜 몇 년씩 약을 먹고 자주 검사를 해야 합니까? 특효 약은 언제 나옵니까? 외국의 좋은 병원을 가면 치료가 될까요?

◇ 자가면역의 체질을 가진 사람들이 도태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이런 질문을 받을 때 내 나름대로 자문 자답을 해본다. 자가면역 질환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생긴 것이며, 기나긴 인간의 역사 속에서 자가면역의 체질을 가진 사람들이 도태(淘汰) 되지 않고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먼저 물질문명의 발달로 수명이 길어지고 의학도 발전되어 그 진단의 기회가 많아진 것도 부인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이해해야 할 점은 면역기능의 합목적성이다. 즉 인체의 모든 구조나 기능은 모두 합당한 목적이 있다.

원래 면역은 외부로 부터의 세균 침입을 막고 우리 몸 안으로 들어온 세균을 죽이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다른 예로 혈압이나 혈당 및 콜레스테롤도 우리가 급격한 운동을 할 때 근육에 필요한 피를 빨리 보내고, 에너지를 공급하고, 세포를 재생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물질들이다.

◇ 면역이 약하면 병에 걸리고, 너무 세면 자가면역에 걸려

하지만 이들이 너무 많으면 고혈압, 뇌졸중, 당뇨병, 동맥경화 등의 병이 나타나 듯이, 면역도 약하면 세균에 의한 감염 병에 걸리게 되고 너무 세면 자가면역에 걸리게 된다. 그러므로 흑사병이나 말라리아 등 과거인류를 가장 괴롭히던 감염질환을 살아 남은 현대인류는 이제 또 다른 성인병이나 자가면역질환에 시달리는 것이다(과학자들은 이것을 “병목 이론: bottle neck theory” 이라고 부른다).

루푸스나 류마티스관절염을 비롯한 자가면역질환도 이런 점에서는 문명에 의한 병이라 할 수 있다. 음식을 적게 먹고도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풍부하여 사냥이나 전투를 잘 하던 조상의 유전자를 가진 자손들이, 가만히 실내에 앉아 많은 음식을 섭취하니 이제 성인병이라는 엉뚱한 병에 걸리게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균의 침입이 많은 환경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흑사병이나 말라리아 등이 세상에서 사라지면서 이제는 필요 이상의 면역성에 의해 자가 면역질환에 걸리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처음 환자들이 나에게 묻는 질문에 답이 억지로나마 조금 풀리게 된다. 면역은 우리가 살아나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며 자가면역질환은 이 균형이 기울어진 경우일 뿐이다. 루푸스 환자들은 남들과 조금 다른 유전자를 가지긴 했지만, 아주 별난 것도 아니고, 그 유전자가 항상 나쁘게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며, 같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도 환경에 따라 병에 걸리지 않는 수가 더 많다.

그러므로 결정적으로 특별하거나 나쁜 유전자가 있어서 그 유전자를 제거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또 조상을 원망하거나 아이들에게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 루푸스 치료는 면역기능을 조절하는 것

루푸스에서의 치료도 혈압이나 혈당을 조절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면역기능을 조절하는 것이다. 저혈압과 고혈압 그리고 저혈당과 고혈당 사이에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게 균형을 이루어야 하며, 저혈압이나 저혈당이 되는 경우는 치료가 차라리 해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즉 면역기능도 혈압처럼 조절하여 균형을 이루게 하는 것이지 아예 뿌리를 뽑고 없애 버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단기간에 한 두 가지 약물을 투여하여 루푸스를 끝낼 수는 없고 평생 면역기능을 조절하는 방법 뿐이다.

즉 루푸스를 치료하는 과정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환경과 자신의 면역사이에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다. 일반인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이런 과정이 있다. 우리가 먹는 음식도 우리 몸으로 흡수될 때 이 물질인 것이다. 면역이 너무 강하면 밥을 먹을 때마다 알르레기나 뱃속에 염증이 생길 것이다. 면역이 너무 약하면 음식물 속의 세균이 장을 통하여 우리 몸 속으로 침입할 것이다.

약물치료는 면역기능이 심히 그 균형을 잃었을 때 치료하는 것이다. 실례로 만약 가족에서 항핵항체가 발견되어도 본인이 느낄 수 있는 증상이 없는 경우는 대개 치료를 하지 않는다. 면역기능이 스스로 균형을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건강한 가족들은 통상적인 건강검진에서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 한, 특수한 검사를 반복적으로 시행하거나, 특별한 약물이나 음식을 먹일 필요는 없다. 실제로 루푸스 환자가 가족 중에 병을 가질 확률은 10% 뿐이다. 그러나 일단 한번이라도 자각 증상이 생길 정도로 심했던 과거력을 가진 환자의 경우는, 언제라도 다시 병이 불붙을(의사들은 “flare” 라고 한다) 가능성이 있으므로 감시와 예방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루푸스라는 진단을 받는 경우에 마치 사고를 당한 것처럼 놀라지 말자. 신비의 특효약이 있다고 하는 말에 솔깃해 하지 말자. 루푸스를 아주 별나거나 우울한 병으로 생각하지 말자. 가정이나 사회생활에서 위축 받지 말자. 어느 병이나 마찬가지이다 고혈압 고혈당이 아니라 “고-면역” 일 뿐 이니까.

[출처] 루푸스를 이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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