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고 잘 배설하자

중앙일보

입력

"똑똑"
진료실문이 열리면서 새하얀피부에 인조쌍꺼풀이 멋지게 진 아리따운 젊은 아가씨가 불안한듯, 진료실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엉덩이의 반만 의자에 걸친체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는다.

마치 큰 죄인인양 고개를 푹 숙인채 모든 과오의 재앙을 혼자 떠 맡을 자세로 대기하고 있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그녀는 흐느끼며 기어들어가는듯한 목소리로 "항문에 피가나고 , 튀어나와 너무 아파요."한다.

한 순간에 그녀의 이미지는 뱃고동 소리와 함께 멀어져간다.조금만 일찍 병원에 왔었더라면, 그렇게 고통을 당할 필요가 없었을텐데,안타까움에 진찰하는 의사 역시도 가슴이 저며온다.

◇ 대변이란 부끄러울 변이 아닌 기쁠 변

소위 일반인들이 이야기하는 치질환자다.
치질이란 질환은 우리 몸 어디에서든 생길 수 있는 그런 불편함중에 하나일 뿐인데, 단지 그 위치가 환자로 하여금 수치를 유발하고, 병원을 늦게 찾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한다.

대변이란 단어에서 변이란 부끄러울 변이 아니고 기쁠 변이라고 한다. 그래서,중국인의 화장실엔 칸막이가 없다.큰기쁨을 누리는 일인데 부끄러울게 뭐 있는가? 라는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굳이 중국을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나라 옛말에"잘 먹고,잘 자고,잘 배설하면 건강하다" 란 말이 있다.

◇ 먹거리는 풍부하지만 배설기능은 오히려 악화

요즘은 먹거리 걱정을 하지않아도 될 정도로 먹음직한 것들이 지천에 널려있다. 그에 반해 우리의 배설은 어떤가? 사회가 복잡해지다보니 맛난것을 먹고도 운동부족,각종 스트레스등으로 장운동장애, 변비환자의 증가, 항문질환의 악화등 배설의 기능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는 상태이다.

필자의 병원에 온 대부분의 환자가 큰 맘먹고 진찰을 받으러 왔다한다. 하지만 돌아갈때의 그들의 모습에는 평온과 행복감이 넘친다.

한번 상상해보라.
변을 몇일 아니 몇주씩이나 보지 못한 상태에서의 답답한 뱃 속이 뻥 뚫렸을때의 기분을.
밑이 빠질 듯이 아픈 치질이 말끔히 해결되고 변이 쑥 빠져 나갈때의 전율을.

2002년 6월 월드컵의 함성으로 다시찾은 우리의 하나됨이 민족적 자긍심과 겨레의 큰 기쁨이라면, 태고적부터 간직한 건강한 항문을 통한 완벽한 배설은 한 개인의 기쁨이요 살아있음에 대한 자부심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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